마라톤 선수처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빌립보서 3장 12-16절 :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 (새번역)

저는 길을 가다가, 마라톤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바쁜 길을 가던 것만 아니면, 길가에 멈추어 서서, 그 마라톤 경기의 뒷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경기에 참가한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의 호흡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길에서 만나는 마라톤 경기를 더 반가워합니다.

TV 채널을 돌리가다 우연히 마라톤 경기 중계방송을 보게 되어도, 저는 그 한 채널에 고정시키고, 목표지점에 앞서 들어오는 몇 사람의 종료광경을 보고서야, 자리를 뜹니다.

제 생애에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도, 마라톤 선수들이 꽤 있었습니다. 제 어머니가, 손기정 선수보다 약 15년 후에 같은 신의주에서 태어나, 중학생 시절의 마라톤 선수였고, 저의 대학동창 가운데 인천고 마라톤 선수가 있었고, 제 첫 직장 동료가 속초 출신으로 양정고등학교에 스카웃된 마라톤 선수였습니다. 또 몽골에서 만난 저의 애제자가 학교 마라톤에서 우승했고, 지금 다니고 있는 중국어 학원 선생님이 만주지방을 대표하는 마라톤 선수였습니다. 그리고도 여기 저기서 만난 분들 중에 마라톤 선수가 더러 있었습니다.

마라톤 경기는 단조롭습니다. 그저 뛰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마라톤 경기를 무심하게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얼마나 뜀박질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많이 일으키고 있는데도, 그걸 물리치며 분투를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순간 순간마다, 마음 속에 들어오는 유혹의 소리들, “내가 왜 남다른 고생을 사서 하느냐”, “모든 사람들은 안 뛰고도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는 뛰기로 작정했느냐” “오늘은 왜 이렇게 옆구리가 결리느냐” “신발이 내 발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자꾸만 기권을 하고 싶은 이유들로 머리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라톤이 다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머리 속의 싸움을 마친 후에야 이윽고 골인지점에 들어섭니다. 처음 출발지점에서 출발한 때의 체중에서 2-3 킬로 빠진 몸무게로 도착을 한다고 합니다. 그게 다 땀으로 빠져나간 것이지 않겠습니까? 정말 사투 끝에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경기로 신앙생활을 묘사한 사도 바울도, 철학자 플라톤처럼 마라톤 선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13-14절)” 이것은 뛰어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로 보이지 않습니까?

진정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이후에, 약 40년에 걸친 대마라톤을 뛴 ‘복음마라톤’ 선수였습니다. 정말 남달리 수고를 많이 했고, 포기하고픈 수 많은 이유들, 특별히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위협이 늘상 그를 에워싸고 있었는데도, 마침내 모든 경기를 마치고, 전설에 의하면, 로마의 ‘트라폰타에’ 라는 곳에서 목이 잘리워 죽습니다. 그의 경기는 죽음의 순간까지 포기되지 않았고 지속되었습니다.

그의 이 모진 마라톤 경기를 생각하면, 우리들의 어떤 불만도, 어떤 불평도 모두 사라집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믿음의 마라톤도 잘 달리어 비록 사도 바울 같은 기록은 못 세우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마라톤’, ‘복음마라톤’의 경기를 나름대로 훌륭히 완주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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