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91편 1-8절 : 1)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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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전쟁 때 부모를 따라 평양에서 남한으로 피난했습니다. 나중에 제 처와 결혼해서 보니까 제 처도 피난민이었습니다. 53년을 함께 살았는데 저희가 아무리 피난민 때를 벗으려 해도 피난민 모습, 피난민 기질을 벗지 못합니다. 단아하게 차려놓고 살지 못하고, 너저분하게 살림을 펼쳐 놓고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피난민 때를 벗지 못하고,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니까, 아브라함 이래로 그의 후손들이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칭 ‘sojourner’ (거류민, 창47:9) 였고, 타칭 ‘히브리인’ (건너온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피난민이라는 정체성은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무엇에게 쫓기든 하나님께로만 피한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본문 1절(“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과, 3절(“그가 너를 …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리고 7절(“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을 보면, 코로나 같은 전염병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해치지 못한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코로나도 걸리지 않고, 비록 걸렸다 하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역으로, 코로나에 걸리지도 않았고, 걸렸더라도 살아 남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론이 되는 것입니다. 고작 시편이 그런 이론을 펼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두 가지 사람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도, 코로나 걸려서 죽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을 의지하던 사람으로 건강하게 세상에 살아 남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코로나로 죽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도 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코로나19가 세계를 삼켜버릴 듯, 아무리 무서운 전염병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최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 우리 모두는 겸손하게, 남을 정죄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면서, 성실하게 맡은 바 사명을 다하며 살아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전염병도, 인간이 겪는 하나의 믿음 훈련 과정으로 있는 것이고, 정치적인 이슈도 믿음의 훈련 과정으로 있는 것이고, 다가오는 겨울도 믿음의 훈련 과정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들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서 우리 앞에 놓인 훈련 코스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정적으로 우리들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은, 우리 모두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죄 용서함을 받고, 영원한 나라에 영접 받는, 그 자비로우신 구원의 손길에 붙잡히느냐 못 붙잡히느냐에 관건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구원의 하나님, 저희들의 단 하나의 피난처이십니다. 모든 흉악과 재난에서 구해 주실 때에, 저희가 하나님께로만 피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로써 저희들의 마음이,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마침내 구원과 영생으로 들어가는 일에만 늘 맞춰져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