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3주 :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1)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3장 7-18절 : 7)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 주더냐? 8)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9)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으셨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신다.”

10)무리가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11)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3)요한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너희에게 정해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14)또 군인들도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아무에게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거나, 거짓 고소를 하여 빼앗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하게 여겨라.”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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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기는 총 4 주간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두 주간은 벌써 지났고, 오늘부터는 제3주간에 돌입합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은 우리들의 묵상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주간으로 보내고자 합니다. 함께 복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온 생애를 전적으로,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맞이하는 길을 예비하도록 가르치면서, 권유한 것이 ‘회개’ 였는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회개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회개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회개했다고 볼 수 있는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구제였습니다. “속옷을 두 벌 가졌으면 한 벌은 없는 사람에게 주라” 는 것이었고, 음식도, 두 사람 몫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 몫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11절)

다른 사람의 속옷과, 다른 사람의 음식을 관리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내 것’을 다른 ‘못 가진’ (the have-not) 사람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누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 입니다. 그건 세례 요한의 생각이 아닙니다. 자기 것으로 ‘have-not’ 을 돕겠다는 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유대교의 헌금에서 기독교의 헌금 전통도 나온 것입니다. 헌금은 용도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성전(교회) 유지’ 와 ‘outreach’ (구제의 손길을 바깥으로 펼치는 일), 이 두 가지입니다. 전자보다 후자의 일이 더욱 긴급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촉각을 예민하게 작동시켜야 할 일은, 지금 굶고 있는 사람, 지금 헐벗은 사람, 지금 대책없이 쓰러져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 일을 누가 하냐고요? 오늘날 매스컴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각종 NGO 단체들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사정을 샅샅이 조사해서 알려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나누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교회와 성도의 책임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리 사캐오의 회개는 물질생활의 회개로 직결되었습니다. 우리들의 회개도 물질생활과 직결돼야 하겠습니다. 이 성탄절에 ‘지갑의 회개’를 좀 해 보십시다. “내가 얼마나 나누며 살고 있는지” 를..

요단강의 세례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으러 온 세관원들과 군인들도 물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장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좀 말씀해 주세요” 할 때에 그들에게 한 말이, “세관원은 정해진 기준 이외에 더 세금을 징수하지 마세요. 그리고 군인들은 무기로 사람들을 위협해서 강도짓 하지 말고, 봉급 받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세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힘든 일 하나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공직을 맡은 사람이 가외의 수입을 얻어 보겠다고 기웃거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듣고 보게 된 일이, 공직자들이 공직을 이용해서 재산을 갈취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일이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을 뿐이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진정 악행입니다.

기독교인이 많아지면서, 사회악은 줄어드는 것이 정한 이치이겠는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목사가 교회에서 본을 보이지 못하니까, 장로들도, 교인들도 사회에서 본이 되지 못해 온 것 아니겠습니까?

<기도> 주 하나님, 성탄을 앞두고, 저희들의 나눔의 생활을 점검하려 합니다. 저희를 도우사, 하나님의 백성다운 나눔의 삶, 의로운 삶을 이루게 도와 주시옵소서. 관행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는 참된 회개가 이루어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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