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태복음 21정 23-27절 : 2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말하겠다.
25)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고 말하면, ‘어째서 그를 믿지 않았느냐’ 고 할 것이요, 26)또 ‘사람에게서 왔다’ 고 하자니, 무리가 무섭소. 그들은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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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성 가운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의 기득권을 기어이 견지하려는 죄성이 있습니다. ‘기득권’ 이란 ‘이미 지니고 있는 자신의 권익’ 을 말합니다.
기득권은 ‘신분’ 과 유사한 것이어서, 인간 각자가 자기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땀 흘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의 배후 인맥 때문에, 또는 자기에게 부여된 어떤 자격이나 지위, 또는 사회계급, 재산, 고향, 특별히 출신학교, 선배, 후배, 동창, 그리고 인척관계, 가문, 이런 요소들 때문에 자연히 먹고 살기가 수월하게 된다면, 이것들은 모두 기득권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들인 것입니다.
어느 정당에서 지난 여름까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경선에서 탈락한 어떤 분이 말하기를, 한국에는 현재 ‘삼대 기득권’ 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이 뿌리깊은 악을 제거하겠다고 기염을 토한 바 있었습니다. 그가 제시했던 ‘삼대 기득권’ 은 공무원, 정규직, 의사, 이렇게 세 가지였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 이 세 가지 기득권 그룹만 제거되면 사회악은 사라지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기득권 카르텔’을 이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기득권자들이 사회의 상층구조를 점령하고, 요지부동의 권력을 이루고 있어서, 아무리 국민투표나 선거를 하고, 법제화를 통해서 이 ‘기득권 카르텔’을 붕괴시키려 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밖에도 기본적인 기득권자들이 엄연히 있습니다. 가령, 가진 자들, 남자들, 배운 사람들, 비장애인들, 과도한 부동산 소유자들, 사회 속에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이중국적 소유자들, 이런 기득권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기득권에 기대어 사는 것 자체를 ‘죄’ 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의 장로들이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견제하려는 의도를 엿보게 해 주는 내용입니다. 걸어 넘어뜨려, 제거하려고 꾀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 곳곳에서 자신을 하나의 ‘사도’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를 사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을 향해, 자기변호를 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사도직을 사람에게서나 사람들을 통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았다” 고 말했습니다. (갈1:1)
교회 안에서도, ‘교권’ 이 무슨 대단한 기득권이라고, 다른 사람이 복음 전하는 일을 약화 내지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기하여, 혹시 우리들이 누리며 살고 있던 기득권이 있었다면, 모두 내려놓는 일을 좀 해 봅시다. ‘권리의 나눔’ 이라고 할까요?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전도의 기회를 확대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우리들의 삶이 이웃을 섬기는 삶이 되기 위하여, 기득권을 증대시키려고 애쓰던 삶에서부터, ‘기득권 선용’ 의 방향으로 나의 삶을 전환하는 일을 하십시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득권자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괴롭히고, 놀고먹던 삶의 자세를 통절히 회개합니다. 땀 흘리지 않고 먹고 사는 자의 위치에서 돌이켜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즐겁게 알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