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90편 1-10절 : 1)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2)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과 세계가 생기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3)주님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4)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5)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돋아난 한 포기 풀과 같이 사라져 갑니다. 6)풀은, 아침에는 돋아나서 꽃을 피우다가도, 저녁에는 시들어서 말라 버립니다.
7)주님께서 노하시면 우리는 사라지고, 주님께서 노하시면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8)주님께서 우리 죄를 주님 앞에 들추어 내놓으시니, 우리의 숨은 죄가 주님 앞에 환히 드러납니다.
9)주님께서 노하시면, 우리의 일생은 사그라지고, 우리의 한평생은 한숨처럼 스러지고 맙니다. 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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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시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라는 무한대한 공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시간이라는 ‘영원한 공백’도 창조하셔서, 인간을 그 속에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사는 지구는, 하루 24시간 동안에 한 번 자전하게 하셨고, 태양을 중심으로 일 년에 한 번 공전하게 하심으로, 일 년이 365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다시 한 해를 마감하게 되었고, 내일부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에는 마치 단절이 있는 것처럼 되어 있지마는, 실상 우주의 시간은 단절이 없이 마냥 흘러갈 뿐입니다. 다만 인간에게는 수명이 있어서,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우주도 자기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의 나라 뿐입니다. 다만 우리 인간은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워하며,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인생에게는 “연수가 칠십이라 하셨고, 강건하면 팔십을 살게 하셨다” (10절)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날에, 여전히 하나님께서 동행하시지만,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들은, 철저한 고독 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무도 동행해 줄 수 없습니다. 옛날 어떤 임금들은 그 고독이 두려워 왕비도, 후궁들도, 심지어 신하들도 함께 죽게 했다지만, 죽음의 길은 혼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일대 일’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매일이 24시간으로 쪼개져 있는 것도, 날마다 ‘믿음 훈련’을 시키기 위함입니다. 일년을 365일로 정하신 것도, ‘죽는 연습’을 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또 다시 오늘 죽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들, 애지중지하던 재산들을 다 두고 떠나는 훈련’, ‘더 이상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때를 맞이하는 훈련’, ‘내 인생에 내일은 없게 되는 날을 맞이하는 훈련’, ‘이 잠에서 깨어날 때면 구주 예수님을 만나는 훈련’ 을 하는 날입니다. 죽음을 혼자 맞아야 하는 것처럼, 죽음 훈련도 혼자서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찬송가 295장, F. 크로스비 작사, G. 스테빈스 작곡)
뜻깊은 ‘임종 훈련의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를 이 세상 살도록 생명 주셔서, 지금까지 세상에서 믿음 훈련 받으며 살게 하시고, 후일에 하나님 나라에 거두어 주시기로 약속하셨사오니, 감사드립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처럼, 베드로 할아버지처럼, 믿음 훈련 잘 받아서, 이 세상 하직하는 날, 예수님 공로 의지하여, 영원한 본향에 저희 영혼이 깨어나게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