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히브리서 12장 1-3절 : 1)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2)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는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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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05년 은퇴 후에, 한동안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에 머물면서 기도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매일 일과에는 조도, 만도가 있고, 매일 정오에 드리는 중보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미리 작성된 기도문을, 날마다 30여분 동안 인도자가 읽으며 함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정오기도의 말미에 저의 관심을 몹시 끄는 기도가 하나 있었습니다. 대략 이런 문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여, 별세한 믿음의 선대들에게 저희의 문안을 전하여 주옵소서” 라는 기도였습니다. 갑자기 제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분들이 저의 문안을 듣게 되는 광경도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물론 세상에 살아 있는 우리는, 기도로 날마다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는 별세한 이들과 함께 계시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들의 문안을 별세자들에게 전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이 기도가 이론적으로는 성립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도를 처음 들어 보았기 때문에 매우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안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별세한 이들을 통하여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니까요.
오늘의 히브리서 본문을 보면 마치 한 커다란 운동장이 연상됩니다. 윔블던 테니스 코트보다 더 넓고, 드높고, 커다란 스탠드에는 구름떼 같은 성도들이 좌정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스탠드 한 복판에 있는 드넓은 운동장에서 어떤 ‘장애물 경주’와 흡사한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경기는 영적인 경기이기 때문에, 축구나 야구 같은 경기와는 전혀 내용이 다릅니다. 장애물들도 각양각색이어서, 입체적으로 온갖 기괴한 장애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이 영적인 경기의 결과는 하나님의 편이 이기느냐, 아니면 사탄의 편이 이기느냐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스탠드에 앉은 관중들이 대단히 열광적으로 응원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선수인 우리들은 경기를 잘 하기 위해서 “무거운 짐들은 벗어버리고” (1절) 달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얽매는 죄” (1절) 도 벗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쓰잘 것 없는 우리들의 세속적 관심들, 필요없는 세속적 임무들, 허장성세 이런 것들을 벗어버리고 달립시다.
이 경기는 혼자만 골인을 먼저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기를 잘 치러낸 사람들이 더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 경기는, 우리들의 ‘영적 전쟁’ 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 경기를 잘 치러내시고, 목표 지점에 골인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를 함께 받도록 하십시다. 이 한 해 동안 성령 안의 삶을 살아, 훌륭하게 경기를 치릅시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달려야 할 길을 다 달려, 이 경기장에서 하나님의 편이 승리하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도록, 성령이여,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