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로마서 9장 30-33절
[30]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의를 추구하지 않은 이방 사람들이 의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31]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32]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33] 그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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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걸릴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사람을 우리가 ‘착한 사람’ 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법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악한 일을 많이 저지르며 사는 악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은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율법 조항에 걸릴 일은 한 번도 행한 일이 없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의로운 사람’ 으로 인정해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논증의 출발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실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의 출발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가령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생각해 봅시다. 누가복음 15장(11절 이하)에 보면, 두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은 아들의 생각으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련히 재산의 절반은 자기에게 올 것이라고 전제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그 절반의 재산을 미리 주면, 사업을 해서 재산을 크게 불리겠다는 포부를 늘어놓습니다. 아버지 판단으로는, 작은 아들에게는 아직 독립적으로 사업을 할 만한 자세가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 간에 격론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작은 아들의 주장이 고집스러웠던지, 아버지는 재산을 미리 나누어 줍니다. 아들은 먼 지방으로 가서, 그 재산으로 사업은 하지 않고 허랑방탕하게 모두 탕진하고 맙니다.
이런 자식을 ‘못 믿을 자식’ 으로 보면 맞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멋) 대로 사는 사람을 우리는 ‘자유인’ 이라 말하지 않고, ‘불신자’ ‘불의한 사람’ ‘죄인’ 으로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 멋대로 살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는데도, 자기는 ‘율법을 어기지 않으며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는 걱정거리인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믿음직스러운 사람’ 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한결같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그런 사람 한 분을 골라서 소개하겠습니다. 욥을 보세요. 욥기 1장 1절에 그를 소개하기를,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 이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욥1:8)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욥의 신앙을 시험대에 올려놓아 보자고 했습니다. 병에 걸리고, 재산을 잃고, 자식들이 모두 죽고, 아내가 떠나고 나서도 신앙이 여전한가를 알아 보자고 했습니다. 그 통에 욥은 얼마나 깊은 시련에 빠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비참한 지경에 빠져서도, 그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이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욥19:25-27)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하나님 신앙’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무리 세상에 많아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세상에 많아도, 나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분이시고, 자비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까지 지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기도> 엄위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나님, 저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데서부터 모든 생각을 시작하렵니다. 여기서 참 평화를 얻고, 여기서 참된 소망과 기쁨이 솟습니다. 이렇게 사는 저희의 삶이 성령 안에서 한결같이 지속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