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와 ‘평지설교’가 따로 있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6장 12-19절 (새번역)

[12] 그 무렵에 예수께서 기도하려고 산으로 떠나가서, 밤을 새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13] 날이 밝을 때에,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14] 열둘은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심당원이라고도 하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배반자가 된 가룟 유다이다.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 거기에 그의 제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 및 시돈 해안 지방에서 모여든 많은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몰려온 사람들이다. 악한 귀신에게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다. [19] 온 무리가 예수에게 손이라도 대보려고 애를 썼다. 예수에게서 능력이 나와서 그들을 모두 낫게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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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산상설교’와 ‘평지설교’를 구분해서 말해 보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산상설교’ (또는 ‘산상보훈’) 라는 것은 마태복음 5-7장으로 종합 편집된 ‘설교 뭉치’를 말하고, 그 서두(마5:1)에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라고 위치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산상설교” 라고 이름 붙인 것이지, “산상”이 가지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 오늘의 본문인, 누가복음 6장 17절에서는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 라고 위치를 밝히고는 “산상설교”(마태복음)와 똑같은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라고 ‘8복’을 축약한 형태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개론학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편집상의 의도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하려고, ‘산상설교’와 ‘평지설교’의 차이점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상’이 되었든, ‘평지’가 되었든 똑같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개론학자들이 뭐라고 말한들, 일반 성경애독자들에게는 아무런 시각의 변화나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독자들의 눈을 끄는 것은,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고 되어 있는 데에 반해서, ‘평지설교’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라고 다소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이 둘 사이에는, 언어적 차이 뿐만 아니라, 의미상의 차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내용을 들여다 보면, 그다지 큰 차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라고 해서, “지금 수중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복이 있다” 즉 현재적 무산자가 복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몇 날 지나서, 다소간의 재산을 확보할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복된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그 재산을 거절했다면, 그런 사람이 과연 복 받을 사람인가 말입니다.

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라고 한 말씀이, 물질 면에서 가난한 사람은 배제하고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물질소유의 다과에는 아무런 관계 없이 “심령이 가난한 자” 즉 “겸허한 자”, “자기를 낮추는 사람”, “자신의 부족함을 사람 앞과 하나님 앞에서 늘 인식하고 사는 사람” 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 만한 사람이라고 산상설교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4복음서의 공통된 기록목적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제물로 목숨을 바치시고, 돌아가셨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하늘로 올리우셨다’ 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이 분명한 기록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각 복음서의 기록자가 소지했던 자료들의 차이, 독자들의 성분상의 차이, 기록자들이 처한 고유한 상황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를 가지고 각 복음서의 대지를 그릇되게 해석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역사를 성경에서 읽고 깨달으면서, 인간적인 흥미로 하나님의 거대하신 뜻을 지엽적으로나, 단편적으로 해석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뜻에 따라, 구원의 하나님을 바로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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