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마가복음서 4장 36-41절. [36] ….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37]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 졌다. [4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 * * *
제가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피난을 제주도로 갔습니다. 여름의 거센 태풍과 파도가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과 문섬을 삼킬 듯이 덤벼드는 것을 바라보며 공포를 느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살던 집 주인이 갈치잡이셨는데, 그 할아버지 말씀이 그런 태풍이 한 해에 몇 번씩 바다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아야 바다가 깨끗하게 청소된다고 했습니다. 바람도 파도도 자연을 살리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예수님 일행이 그런 파도를 만났는데도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비록 제자들 가운데는 베드로 같은 어부 출신으로 파도에 익숙한 이들도 있었지만, 진정 그 날의 파도는 살인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죽는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 난리통에도 주무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일어나세요”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호들갑’ 을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발악’ 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께서는 잠에서 깨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바람은 예수님의 꾸짖음을 듣고, 대뜸 가라앉았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죽는다 ’며 허겁지겁하던 제자들을 향해 꾸지람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왜 무서워하느냐? 왜 그리도 믿음이 없느냐?” 고 제자들을 꾸중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제자들의 의문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하고 서로 수군거렸다 했습니다. 누구를 두고 지금 의문을 품는 겁니까?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방금 보았으면서도, 의문을 품고 있는 것 아닙니까?
<기도> 주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으면서도, 또 지금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의심을 품는 저희를 용서하옵소서. 전쟁도 멈추실 수 있고, 온 세계를 삼킬 듯 덤벼드는 코로나-19도 멈추실 수 있는 분이신 주님을 지금도 저희들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주여, 저희를 용서하옵소서. 믿음으로 모든 일에 대처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만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