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요한복음 6장 25-29절. [25] 그들은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를 만나서 말하였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2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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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에, 제 아버지는 평양 성화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6.25전쟁 때에 온 가족과 함께 남으로 피난하여 1950년 말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초량동 전재민수용소는 피난민들로 꽉 들어찼습니다. 아버지는 저녁마다 부두로 나가서, 군수물자 하역작업을 한 수입으로 일곱 식구가 먹고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말년에 청주 동산교회(당시 시온교회)에서 마지막 목회를 했습니다. 56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성장기에 있던 저희 형제들을 위해 제 어머니가 무척 고생했습니다. 온갖 힘든 일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은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여러 가지 점에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의 현장을 영화로 재현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거기서 어떤 이들은 구명조끼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극한상황에서도 그들의 맑은 영혼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서울 동작동에 있는 현충원을 예방했습니다. 수많은 구국장병들이 묻혀 있었습니다. 고귀한 생명을, 아까운 청춘을, 조국과 겨레를 위해 바치고 거기 잠들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매일의 평안한 삶이, 그들이 목숨 바치고 떠난 귀한 날들인 것을 생각하니, 허투루 살 일이 아닌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 6:58)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는 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대속하시는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신 예수님의 몸을 ‘빵’ 이라 한 것입니다.
억만 명의 생명보다 더 고귀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서 바쳐,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 영생의 기회를 허비하는 일이야말로 이중적 죄일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 그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값없이 만든 죄, 이 큰 죄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자발적인 수고와 헌신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든, 그 모든 수고와 헌신들이,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영생의 축복을 차지하게 되는 결과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만사의 종국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모든 수고와 헌신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영생의 길로 가게끔 인도하는 수고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정정} 어제 글의 네번째 단락에서 ‘불이 나게’는 ‘부리나케’의 착오여서 고쳐 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