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 기념일’> (새번역)
사도행전 15장 37-40절. [37]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38] 그러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함께 일하러 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39] 그래서 그들은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고 말았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 [40] … 바울은 실라를 택하고, … 떠났다.
디모데후서 4장 10-11절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대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십시오. 그 사람은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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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에게는, ‘마가’ 라는 이름 외에 ‘요한’이 있어서, 합해서 ‘마가 요한’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는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의 기록자이며,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 살던 상당한 부자로서,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신도들의 집회장소로 제공하였고, 사도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습니다(행 12:12).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잡수신 다락방이나, 오순절에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이 마가의 집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먼저 보내어, 유월절을 준비시키실 때에, ‘물동이를 메고 나왔던 남자’(눅 22:10)가 마가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예수님께서 체포-연행 당하시던 밤에, 한 사내가 홑이불을 벗어버리고 도망친 이야기(막 14:51-52)의 주인공이 바로 마가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마가는 예수님의 생존시에는 신자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베드로에게 감화를 받아 신자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골로새서(4:10)에 따르면, 마가는 바나바와 사촌 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최초의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 마가와 동행하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 선교 팀이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을 때에, 무슨 일인지, 마가가 혼자 예루살렘으로 먼저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행 13:5-13). 이 일로 말미암아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고, 선교팀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행 15:39-40).
하지만, 마침내 바울과 마가가 화해했다는 증거를, 바울이 첫 투옥을 당했던 당시에 마가가 함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봅니다(골 4:10). 또 바울이 두번째 투옥되었을 시기에는, 마가는 바울 선교단의 일원인 디모데와 더불어 투르키예의 에베소 지방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부들의 전설에 따르면, 그는 사도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베드로가 아람어로 설교할 때에 마가는 희랍어나 라틴어로 통역했다고 전합니다. 베드로가 순교 당한 후에, 마가는 에집트로 가서 죽기까지 전도했고,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교회가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은 다른 공관복음서(마태, 누가)와 요한복음보다 일찍 기록되어, 다른 복음서들의 작성을 선도한 큰 공로가 있습니다. 특별히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유대인 크리스찬들도 깊은 상심과 로마의 박해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복음의 진수를 글로 읽을 수 있게 정리해 주고, 예수님의 최후 승리를 확신시켜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사도들과 동역하여 복음 증거자로 힘차게 살았던 마가를 교회역사 속에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성령 안에서 복음 증거자로 이 시대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