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사고 관행’을 바로잡으신 하나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사도행전 9장 3-8절.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7]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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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탄압에 선봉 섰던 유대교 지도자가, 하루 사이에 기독교 전파의 선봉인 바울로 변한 사건은,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나 볼 수 있는, 진실로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는 대제사장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가지고 떠났습니다(행 9:2). 위임장 사본이 남아 있지 않으나, 아마도 내용은 “대제사장이, 예수 도당을 색출하기 위해서 이 사람(사울)에게 권한을 위임하니, 모든 관장들과 백성들은 그에게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 이런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젊은 사울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을 체포-연행한 공훈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웃 국가인 수리아의 다마스쿠스로 도주한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217 키로나 되는 거리를 체포조와 함께 거의 여행을 마쳐가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개입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빛이 비치고,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그와 동행하던 사람들은 음성을 듣기는 했지만,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누가는 전합니다(행 9:7). 사울은 너무도 확실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고전 9:1, 15:8, 갈 1:16).

예수님의 말씀은 두 가지였는데,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가 그 하나였고,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성 안에 있으니 그를 만나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사울이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고 있는 것은,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이라는 선언이 첫째였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대적의 자리에서 돌아서서, 나의 일꾼이 되라”는 분부가 둘째였습니다.

사울은 유대교의 청년 엘리트 지도자로서, 그대로 성장하면, 유대교 최고위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을 보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 원리주의자로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율법은 의로는 책잡힐 것이 없다”(빌 3:6)고 자신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상위에 무엇인가 더 있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을 그는 그냥 두지 못했습니다.

그가 회심한 이후에 그의 여러 편지에서 말한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신 속죄 제사가 모든 율법의 완성이었다는 사실, 공의와 율법의 상위에 하나님의 은혜의 법이 있다는 사실, 율법 준수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 곧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사실이 사울을 거꾸러뜨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하루 사이에 사울을 바울이 되게 한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유대교 전통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몸부림치던 사울을 고쳐잡아, 십자가 복음의 사도 바울로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에 찬양을 올립니다. 주여, 저희도 진리의 길에 늘 서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일생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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