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아타나시오 기념일
요한복음 10장 24-28, 30절. [24]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그 일들이 곧 나를 증언해 준다. [26] 그런데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 * * *
( 1 ) 기독교는 세 가지 대표적인 신앙고백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오신경,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사도신경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겠지요. 니케아신경은 예전적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예배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제2세기 전반부터 이미 교회가 세례식을 준비시키는 교안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점차 보완되어 제5세기의 사도신경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니케아신경(325년)은 내용상 사도신경과 별다른 차이가 없고, 다만 사도신경의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문장들이 조금씩 길어졌을 뿐입니다.
또 아타나시오신경은, 373년에 별세한 아타나시오가 신경을 작성하는 일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신경으로 교회에서 사용된 것은 주후 420년 이후부터였습니다. 내용도, 니케아신경과 대동소이하며, 다만 분량이 좀 확대되었을 뿐입니다.
( 2 ) 그런데 동일한 내용의 신경들이 짧은 것과 긴 것이 왜 세 가지 씩이나 필요했는가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당시에 교리 논쟁이 대단히 치열했기 때문에, 신앙에 혼선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경의 문장이 그때마다 보강되어서, 여러 가지 신경이 작성된 것입니다.
특별히 제4세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방에 사제인 아리우스(256-336)가, 예수는 철저히 인간일 뿐이었고, 신성을 지녔다고 하는 말은 지어낸 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를 비롯한 광대한 지역의 사람들이 그의 학설을 지지하고 있어서, 성서적 기독론이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 이가 아타나시오였습니다. 지지세에 있어서도 아타나시오는 열세였고, 더구나 세속권력(콘스탄틴대제, 아리우스파, 쥴리안제왕, 발렌스제왕)이 도합 다섯 차례에 걸쳐서 그를 주교직에서 추방했지마는, 아타나시오는 굴하지 않고,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이리하여 교회로 하여금,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전통 위에 굳건히 서게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지방의 성직자들과 신도들은, 그들의 주교 아타나시오가 정치권력에 의해 여러 차례 추방을 당한 기간 중임에도, 아타나시오의 가르침을 따라,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끝까지 고수했습니다.
“비물질적이고, 비형상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육신을 입었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다만 하나님 만이 이루실 수 있는 사건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이론으로 이해가 될 수 있는 것만이 역사적 사실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타나시오의 논설, ‘말씀의 성육신’ 중에서)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주님, 하나님” 이라고 했던 도마처럼, 저희도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 하나님’ 으로 고백합니다. 저희의 연약한 믿음을 항상 돋우사, 참 사람이고 참 하나님이셨던 예수님을, 저희의 주님으로 공경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