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돌 같이 긴하게 하소서”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베드로전서 2장 4-8절 (새번역)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 이요,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 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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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을 때에, 진정 오래 쓰기 위해서 짓는 집은 돌로 짓습니다. 잘 지은 집이라 하더라도 목조로 지었다가는 원치 않게 화재를 당할 수도 있고, 지진이나 홍수로 무너집니다. 지금은 철골과 시멘트로 지은 집들이 1백 년 이상 견딥니다. 하지만 석조로 된 건물들이 천 년을 버티고 섰는 것을 보면, 역시 석조건물의 우수함을 알게 됩니다.

교회를 석조건물에 비유했습니다. 교회 하나를 지으려면 수많은 돌들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각양각색의 지체들이 필요합니다. 석조건물은 기초부터 돌을 바닥에 깝니다. 기초 가운데도 모퉁이 부분에는 든든하게 큰 돌을 박아 육중한 건물을 받칩니다.

교회의 모퉁이돌은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돌에서 연결되는 큰 돌들이 건물의 기초가 되며, 그 돌들 위에 그것보다 작은 돌들이 차곡차곡 쌓여지게 됩니다. 사도들과 교사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이 손에 손을 붙들고, 한 마음으로 교회를 이룹니다.

우리들은 영상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의 성전 기초로 쌓아놓은 돌담을 가끔 봅니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돌들이, 아무런 토목 중장비가 없던 시절에, 그렇게도 단정하게 차곡차곡 쌓아진 것을 보면, 진정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성껏 쌓은 돌벽이 약 삼천 년 이상 지나도록 끄떡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어느 돌 하나라도, “아이고, 이젠 더 이상 무거워서 못 견디겠다” 하면서 툭 빠져나간다면, 그 암석 담은 위험해지고 말 것입니다.

교회가 유지된 것은, 신도 각자의 충성스런 믿음의 섬김과 인내로, 모든 어려운 때를 경과해 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초기 3백 년의 모진 박해기간을 경과한 것도, 중세기 천년을 몰락하지 않고 견디어 온 것도, 르네상스 이래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와 실용주의가 범람하는 근대과학문명의 세파 속에서도 견디어 온 것은, 모퉁이돌이신 주님과 더불어 주님의 신실한 ‘돌’로서 교회를 버텨 온 성도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세계 교회는 두 가지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무슬림권과 공산주의 세력권 속에 날로 거세지는 박해가 그 하나요, 비록 신앙의 자유는 법으로 보장한다 하지만,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의 세파가 너무도 드세게 교회 안에까지 침투하여, 신도들이 흔들리고 있는 점이 또 하나입니다.

이제 ‘돌’의 근성을 나타낼 시기입니다. 거대한 무게를 감당하고 계시는 모퉁이돌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사악한 시대 속에서 굳세게 성도로 남는 근성 있는 ‘돌’들로 사십시다. “또 우리 자손들 다 주를 기리고, 저 성전 돌 같이 긴하게 하소서”(찬송가 50장 3절, 성공회 성가 255장 3절).

<기도> 주 하나님, 성전을 이루고 있는 돌들처럼 저희 각자도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는 돌들로 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진정 긴한 돌들로, 이 시대를 버텨나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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