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보니파스 주교의 기념일
누가복음 17장 7-10절(새번역) [7] “너희 가운데서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에 앉아라’ 하고 그에게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8] 오히려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야,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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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일에 복음을 전한 영국 사람 보니파스 주교(675? – 754?)의 기념일입니다. 그는 영국 크레디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세례명은 윈프리드(Wynfrith)입니다. 그러나 보니파스 (‘은인’ 또는 ‘여관주인’ 이라는 뜻) 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당대와 후대의 사람들이 그를 ‘보니파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40세가 될 때까지 영국 사우드햄턴 수도원에서 신자교육을 했습니다. 특별히 그의 성경강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가 작성한 라틴어교본은 후일에 모든 라틴어교본들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718년에 그는 선배 수도자들 처럼, 국외 선교를 지망했습니다. 그는 독일 지역을 선택하고, 그후로 37년 동안 독일에 가서 개척선교를 했습니다. 그의 열정과 감화력으로 헤쎄, 바봐리아, 붸스트팔리아, 투링겐란트, 뷔르템베르크 등지에 교회를 세우고, 732년에 교황 그레고리 III세는 그를 마인쯔 관구의 대주교로 세웠습니다.
프랑크(옛 프랑스제국)의 ‘난쟁이 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페핀 왕은 보니파스를 열렬히 조력한 선교동역자였습니다. 보니파스는 그의 나이 70이 되었을 때에도 쉬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인쯔 관구장직을 사임하고, 선교 일선에서 여덟 명의 개척선교사들과 더불어 일하면서 노년을 보냈습니다.
많은 회심자들에게 견진성사를 베풀려고, 풀다 강변에서 성사를 준비하던 중, 이교도들인 프리슬란트 폭도들의 공격을 당하여, 그들의 칼날에 다른 신도들과 더불어 순교했습니다. 아래에, 그가 캔터베리 대주교 쿠트버트에게 보냈던 편지 한 대목을 싣습니다.
“저는 저의 부족함 때문에 이제 교회행정을 맡는 직책에서 떠나려고 합니다. 저는 요사이 솔로몬의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과 어쩌면 똑같다고 느낍니다. ‘네 온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 너의 인생길에서 주 하나님의 말씀 만을 기억하라. 그가 너를 인도하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등에 짐을 지워 주신 분, 곧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리들의 능력으로 짐을 지려 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하셨으니, 짐을 진 저희들을 도우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짖을 줄 모르는 개나, 말못하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늑대 떼를 보고, 겁을 내어 도망치는 목동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양무리들을 충실히 돌보는 목자들이 되십시다.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세상 권력자나, 낮은 백성에게나, 빈부, 노소를 가릴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십시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충실한 종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책임있게 전하는 자들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