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도미닉 선교사, 수도원장의 기념일
시편 78편 1-4, 7-8절 (새번역) [1] 내 백성아, 내 교훈을 들으며,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2] 내가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하며, 숨겨진 옛 비밀을 밝혀 주겠다. [3] 이것은 우리가 들어서 이미 아는 바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것이다. [4] 우리가 이것을 숨기지 않고 우리 자손에게 전하여 줄 것이니, 곧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능력과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미래의 세대에게 전하여 줄 것이다. … [7] 그들이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셨다. [8] 조상처럼 반역하며 고집만 부리는 세대가 되지 말며, 마음이 견고하지 못한 세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세대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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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Dominic, 1170 – 1221)은 스페인의 한 농촌에서 평민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거스틴수도회에서 수사가 되는 훈련을 받으며, 기도생활과 고행으로 오랫동안 자신을 단련했습니다. 31세 이른 나이에 소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
도미닉의 성실성은 두루 알려졌습니다. 그의 주교 디에고가 교황의 명을 받아, 번창하고 있던 이단, 덴마크의 카탈스(또는 ‘알비겐세스’라고도 함) 무리들을 설득할 임무를 맡았을 때에, 디에고주교와 함께 프랑스를 거쳐 기나긴 순회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그의 생애는 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디에고 주교와 도미닉은 가는 곳마다 성경강해 방식으로 전도했습니다., 두루마리성경책인 마태복음과 바울의 서신들을 지고 다니면서, 알비겐세스 이단자들이 믿고 있었던, ‘육신에 속하는 것은 모두 악이다’ 라고 가르치는, 이원론적 복음 이해를 바로잡아 주는 것이 그들의 전도였고, 이단척결의 방법이었습니다.
흔히 교황의 특사들은, 복종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방식으로 이단들을 대하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러나 도미닉의 방식은, 처벌보다 올바른 교육이 교회의 계도방식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알비겐세스 이단들에게 디에고 주교가 살해를 당했습니다. 이리하여 교황은 알비겐세스의 지도자 카운트 레이먼드에게 선전포고를 했던 것입니다.
전쟁은 5년 동안 지속되었고, 무수한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전쟁의 와중 속에서도, 도미닉은 ‘칼이냐 교황에 대한 복종이냐’ 의 방식을 거절하고, 위험을 무릅쓴 채, 성경학습을 인도하기 위해, 살상이 자행되고 있는 전장을 두루 다니면서, 복음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진력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와 덴마크 일대의 모든 사람들은, 도미닉의 수련자들이 전한 복음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도미닉은 뚤루(오늘의 남부 프랑스) 지방에 한 수도단체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신학교와 마찬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특별히 도미닉은 전도활동에는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수녀원의 설립도 추진했습니다.
이리하여 오늘날의 많은 수도단체들 가운데, 도미닉의 규정을 따르는 수도단체들은 신학수업과 전도에 특별히 역점을 두는 수도단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신대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일체감을 가지고 도와 주며, 성경을 학습하되 예수님의 언행을 닮기를 힘쓰는 교육목표를 지향합니다.
그의 건실한 해외선교의 방식이 13세기를 통하여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 특별히 영국 선교를 위해 큰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이 도미닉이 볼로냐에서 숨을 거둔 날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에게 훌륭한 복음전도자 도미닉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그를 본받아, 성경학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의 언행을 우리가 본받으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