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개정판)
{ 복음 } 루가의 복음서 24장 25-35절 …….. [25] 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믿기가 어려우냐? [26]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이자 [29] 그들은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가십시오.” 하고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30]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32]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33] 그들은 곧 그 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가보았더니 거기에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34]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35]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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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인 예루살렘에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그 중 한 사람의 이름이 글레오파)이, 저들의 스승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듣고도, 이를 믿지 못한 채,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깊은 좌절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소위 ‘과학적 사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다윗의 왕실을 회복해야 한다는 그들 나름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맥없이’ 죄인으로 취급받아, 십자가에 달리고는 그대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빈 무덤을 보고 왔다는, ‘왕년에 일곱 귀신이 들렸었다고 소문나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전언을, 그들은 결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기독교권 나라들에서 기존의 신자들이 믿음을 버리고 무신론적 세속의 가치관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열심있던 신앙생활을 헌신짝 버리듯이 팽개쳐 버리고,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수없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성령으로 성도들과 함께 동행하시며 ‘두 제자’들의 곁으로 다가서기도 하시고, 또는 인터넷 소식, 문학작품들과 예술작품들, 신앙서적, 강론, 사건 등 여러 매체들을 통하여 다가오고 계십니다.
저를 ‘엠마오의 길’에서 건져내려고 했던 책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책들입니다. 정치근의 “젊은 날의 수기 – (부제)Y여고의 임석영선생”, 셸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존 스토트의 “제자도” 등등.
다른 분들이 만났던 엠마오 도상의 ‘낯선 동행자’는, 사람에 따라 여러 형태였습니다. 어떤 분은 성직자를, 또는 좋은 은사나 상담자를, 어떤 분은 모범적 실천가를 만납니다.
비록 2천 년 전, 엠마오 길에 현현하신 예수님이 아닐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인도자를, 우리가 인생길에서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엠마오 길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자들을 만나 도움을 받으신 여러분, 종종 엠마오 길에 나서서 길 도우미의 역할을 하실 의욕을 느끼시지는 않으십니까?
< 기도 > 주 하나님, 저희의 회의적인 인생길에서도 저희 앞에 다가오셔서 길잡이가 되어 주신 주 성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도 종종 엠마오 길에 나가서 좌절하고 세속으로 향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일깨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