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1과 } 사도행전 14장 1-5절 …. [1] 바울로와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에서 처럼 이고니온에서도 유다인의 회당에 들어가 설교했다. 이 설교를 듣고 수많은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신도가 되었다. [2] 예수를 믿으려하지 않는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믿는 형제들에게 악의를 품게 하였다. [3] 그러나 주께서는 그들에게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행하게 하셔서 하느님의 은총에 관하여 그들이 전하는 말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다. 그래서 바울로와 바르나바는 오랫동안 거기에 머무르면서 주님께 힘입어 대담하게 말씀을 전하였다. [4] 그 도시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서 한 쪽은 유다인들을 지지하고 다른 쪽은 사도들을 지지하였다. [5] 그러나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과 한데 어울려 사도들을 학대하고 돌로 쳐죽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 만도 2과 } 요한 복음서 10장 31-33, 40-42절 …. [31]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33] 유다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 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하고 대들었다. …. [40] 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 [41]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와서 서로 “요한은 기적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가 이 사람에 관해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하면서 [42]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 = * ( 1 ) 무엇이 우리들의 행동의 방향을 정합니까?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듯하면 반대하고, 자기에게 유익이 될 듯하면 지지합니다.

하지만 장기 안목적으로 볼 때, 이익이 될는지 해가 될는지 불명확한 경우에는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잠시후에 자기에게 해가 돌아올는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아주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태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즉 영원의 관점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은 유리할지라도, 결국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올 일이라면, 지금 반대할 수 있을 것이고, 또는 지금 당장은 불리하더라도 결국 자신에게 영생과 구원을 가져다 줄 일이면, 그 일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이라면, 시간 장축을 길게 보면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 2 ) 스콧틀랜드 사람 핀니안( Finnian of Movilla, ? – 579)은 마히(Mahee) 섬의 한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아일랜드의 모빌라에서 수도사로 살았습니다. 당시에 라틴어로 된 성경을 핀니안이 아일랜드에 소개하던 이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라틴어성경의 번역을 허락하지 않는 때였으므로, 핀니안은 라틴어성경을 읽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아이오나 섬을 기점으로 스콧틀랜드 개척선교를 이룬 콜룸바에게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원을 바라보던 그는 579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 3 ) 윌리엄 세일즈버리(William Salesbury, 1520?-1584)는 얜서넌 지방에서 출생하여, 옥스포드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549년에 신약성경의 복음서와 서신 발췌본을 웰쉬어로 제작했습니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 1567년에는 신약성서 웰쉬어 판을 제작했습니다.

물론 번역상의 문제점들이 후일에 많이 지적된 바는 있었지만, 성경번역 역사에 있어서, 그리고 라틴어성경을 읽을 수 없는 이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읽게 하는 혁명적인 일을 이뤄낸 공헌을 했던 이였습니다.

그도 역시 영원을 바라보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하루살이 같은 찰나적인 판단에서 인생을 그르치지 말게 하시며,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세상을 올바르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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