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반석 위에 사는 사람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서신 } 히브리서 11장 12-13, 17-19절 …. [12]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늙은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서 난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게 되었습니다. [13]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약속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이 지상에서는 자기들이 타향 사람이며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 [17]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시험하시려고 이사악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기꺼이 바쳤습니다. 이사악은 외아들이었고, 그를 두고 하느님께서 약속까지 해주신 아들이었지만 그를 기꺼이 바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18] 하느님께서는 “이사악에게서 너의 후손이 펴져 나가리라” 하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었던 사람들까지 살리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를테면 죽었던 이사악을 되찾은 셈이 되었습니다.

* = * 성경을 대본으로 한 영화에서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 돌제단을 쌓고, 그 위에 아들을 밧줄로 묶어 뉘고, 칼로 아들의 멱을 따려는 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권능을 믿었기 때문에, 비록 자기가 하느님의 명령을 좇아, 아들 이사악을 죽이더라도, 하느님께서 능히 아들의 생명을 되살려 놓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었다고 말합니다.(위의 본문 19절)

그러나 그것은 히브리서 기자의 생각이고, 인간은 믿음도 가질 수 있지만, 의심도 믿음 못지 않게 끈질긴 것이어서, 칼을 들고 아들의 멱을 따려는 그 순간에, 믿음 만이 그의 마음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순간, 순간, 하느님께서 과연 아이의 생명을 되돌려 주실 것인가 수 백 차례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여졌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믿음이 의심의 두터운 장벽을 무너뜨리던 순간에 결행을 하려 했을 것입니다. 의심의 작용은 수없이 그를 좌절에 빠뜨리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의심을 묵상하면 의심이 인간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성령께 의지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집중하면 의심은 물러가고, 의심을 타고 하느님을 거역하게 만들려던 사탄도 떠나갑니다.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4장 37-41절 …. [37]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40] 그렇게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41]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 = *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에게 얼마간의 폐소공포증이나 고소공포증을 심어 두셨습니다. 그래야 개미처럼 땅 속에 기어들기를 좋아하다가 질식사 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원숭이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훌쩍 훌쩍 뛰다가 비명에 죽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북이나 자라와 같은 동물이 바람이 불든 파도가 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가는 익사하므로, 파도를 두려워하는 본능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본능 대로, 파도를 두려워하던 제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위의 본문 40절)

제자들 곁에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데, 왜 겁에 질려 있느냐’, 하는 꾸지람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던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분들이 칼이나, 돌, 불, 또는 끓는 기름, 사자같은 맹수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살아계신 하느님과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신앙이 고문과 살인의 도구들의 위협을 능가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에게 의심과 두려움의 본능을 꺾어 누를 수 있도록 저희 마음을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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