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게라사에 살았다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5장 1-17절 …. [1] 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마귀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쳤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외쳤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주님께서 저를 어쩌시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님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8]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마귀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9] 예수께서 그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마귀들이 예수께 간청했다.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13]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마귀들이 나와 돼지들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2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 쪽으로 비탈을 내달려 빠져 죽었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사람이 옷을 입고 제 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자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사람과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 = * ( 1 ) 유대인들의 무덤은, 땅을 수직으로 파내려가 거기 관을 묻는 우리들의 습관과는 달리, 바위 절벽에, 경주 석굴암처럼 수평으로 파고 들어가, 굴 속의 벽에 시신을 놓을 자리를 만들고 거기다가 차례 차례 여러 시신을 장례하고, 그때마다 바깥 굴 입구에 둥근 돌을 굴려서 무덤을 막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살았다는 말은, 그런 시신을 안장한 굴 속에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영적으로 보자면>, 영혼이 생명을 잃어 버리고, 육신 만이 살아서 어기적거리는 수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형편>과 흡사하지 않을까요?

( 2 ) 인간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살기를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악령에게 이끌리기 쉽지 않겠습니까?

이기주의(철저히 자기중심적 판단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 편의주의(정의나 성실, 또는 자비 같은 가치에는 관심이 없이 자기 편의를 위해 사는 삶의 방식), 출세주의(인기나 이름을 날리는 일을 삶의 목표로 사는 삶의 방식), 물질주의(재물의 소유나 축적에 온 정신을 쏟으며 사는 삶의 방식), 쾌락주의(육체적 쾌락에 시간과 정력과 재물을 쏟아 붓는 삶의 방식) 등의 자세로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아무리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산다고 해도, 사실 그들은 모두 게라사의 무덤가에 살던 사람이나 흡사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복음을 전해 주어도, 미동도 하지 않고, 간혹 빛의 자녀들의 선한 삶의 본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동이 없는, 그들의 세속적 가치관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요지부동인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3 ) 게라사 지방의 소위 ‘성한 사람’들을 봅시다. 그들은 어떤 이들이었던가요?

무덤 가에서 맨날 살던 사람에게서 귀신이 물러가고 제 정신이 돌아와서 점잖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으면, 그것은 평생 산들 한 번도 볼 수 없는 대단한 기적이었습니다.

그 기적을 베푸신 이가 자기들 앞에 서 계신 나자렛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면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 분의 정체가 무엇일까’, 거기에 관심을 가졌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분이 메시아이시라는 것,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 이 정도로 파고 들어서 뭔가를 알아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미쳤던 사람이 성한 사람이 되어 온순한 사람으로 회복된 데에는 관심이 없었고, 바닷물에 빠져서 떼죽음을 당한 2천 마리의 돼지들이 무척이나 아까웠고, 그런 엄청난 재산상 손실을 끼친 이 낯선 사람(*예수)에게 얼른 게라사에서 떠나 달라고 강청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손이 그들 가까이 왔었는데도, 그 손을 뿌리친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려 하면, 자기 계산법으로 계산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를 다니면,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올는지, 교회가 말하는 ‘진리와 영생의 막연한 가설에 속아’ 공연히 시간적, 재정적 손실을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부정적 응대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 4 ) 세상에는 병마의 묶임을 당하여, ‘무덤 속에’ 사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게라사에 도착하자마자 만나게 되셨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자렛 예수여, 내 안의 마귀들을 쫓아내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 말은 할 수 없었고, 마귀가 그의 입을 주장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 주님께서 저를 어쩌시렵니까?”(본문 7절) 이런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껏 예배에 나가서 부르짖는 기도가 이런 기도는 아닌지 두렵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게라사에 도착하시던 즉시로 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버리셨습니다.

전통적 유대인들은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레위기 11:7-8, 신명기 14:8, 이사야 65:4, 66:17) , 이 게라사 지방의 돼지떼는 이방인들의 소용을 위해서 방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 무한지불을 할 수 있으셨던 주님의 계산법으로 돼지떼를 몰살 당하게 두셨습니다. 마귀 들렸던 이가, 마귀들이 쫓겨나가는 실상을 그의 육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영혼이 마귀의 시달림을 받지 않는 영혼으로, 날마다 성령 안에 살아있는 영혼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늘도 빛의 자녀들로 광명한 인생, 하늘나라 백성다운 의롭고 자비로운 인생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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