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면 돌아갈 길 여신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차용 } 집회서 17장 24-29절 …. [24] 그러나 주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이 당신께로 돌아올 길을 열어놓으시고 희망을 잃은 자에게는 힘을 주신다. [25] 주님께로 돌아오너라, 죄를 끊어버려라. 주님께 기도하여라,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지 말아라. [26]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로 돌아오너라, 부정한 행위는 버려라. 그리고 악한 것을 역겹게 생각하여라. [27] 살아서 주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는다면 죽어서 어떻게 지극히 높으신 분을 찬양할 수 있겠느냐? [28] 죽은 자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 없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라야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 [29] 주님의 자비의 크심이여! 당신께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너그러우심이여!

{ 성시 } 시편 32편 1-5절 ….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죄허물 벗겨진 자, [2] 야훼께서 잘못을 묻지 않고 마음에 거짓이 없는 자. [3] 나 아뢰옵지 않으렸더니, 온종일 신음 속에 뼈만 녹아나고 [4] 밤낮으로 당신 손이 나를 짓눌러 이 몸은 여름 가뭄에 풀 시들듯, 진액이 다 말라 빠지고 말았습니다. (셀라) [5] 그리하여 당신께 내 죄를 고백하고 내 잘못 아니 감추어, “야훼여, 내 죄 아뢰옵니다.” 하였더니, 내 잘못 내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 = * 위의 두 본문(구약차용과 성시)은 모두 회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루가의 복음서 15장에 나오는 ‘잃었다가 집에 돌아온 아들’을 반겨 맞아주던 아버지처럼, 회개한 사람을 반기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들의 마음은 자식에게 무슨 큰 대접을 받고 싶어서 애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기만 하면,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서 살고 싶어하던 아들이 마음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순간, 그의 앞길은 열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 이것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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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르코 복음서 10장 19-23절 …. [19] “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남을 속이지 마라.’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들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20] 그 사람이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께서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22] 그러나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2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고 말씀하셨다.

* = * 이 청년이 부자였다고 본문이 말합니다.(막 10:22)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목적은, 그 이름난 선생님에게서 칭찬을 받고 싶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와서 하는 첫 말이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반문하신 질문이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이 대답하기를, ‘그런 계명 정도는 어려서부터 잘 지켜 오고 있습니다.’ 했는데, 여기서 ‘고작 그런 말을 듣고 싶어 온 것 아니라’ 는 인상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때 이 청년을 자세히 보셨다고 했습니다.(본문 21절 서두) 진정 이 청년이 숭앙하는 분이 하느님이신가, 아니면 무엇이 그가 의지하고 사는 대상인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 내가 시킨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습니다. 그 청년이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큰 포부를 품고 왔다가, 주님 앞을 떠나갑니다. 재산이 많아서 떠나는 사람, 재산이 없어서 떠나는 사람, 친구 때문에 떠나는 사람, 이념 때문에 떠나는 사람, 쾌락 때문에 떠나는 사람, 취미 때문에 떠나는 사람, 정치적 소망 때문에 떠나는 사람, 지식을 추구해서 떠나는 사람, 건강 때문에 떠나는 사람, 모든 이유가 주님을 떠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을 떠나기에 합당한 이유는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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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념하는 믿음의 사람 챠드(Chad, 선교사, ? – 672) 주교를 소개합니다.

그는 영국 노덤브리아 출신으로, 그의 4형제가 모두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린디스판 섬에 있는 수도원에서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가 요크(York)의 주교로 피선되었지만, 당시 교회에 퍼져 있었던 ‘앵글로-색슨 우선주의’ 풍조에 맞지 않는다 하여 주교직을 떠나도록 조치되었습니다.

그는 아무 갈등 없이 기쁜 마음으로 라스팅엄으로 돌아가서 수도생활에 전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겸손한 태도, 검소한 생활, 감화력 있는 설교에 늘 감복했습니다.

그래서 데오도르 대주교는 그를 다시 메르시안의 주교로 임명하고, 후에는 리치필드 관구의 대주교직을 맡겼습니다. 그후 3년째 되던 해인 672년 3월 2일, 당시 창궐하던 흑사병으로 별세한 듯합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는 죄 밖에 없사옵고, 걸핏하면 저희 영혼이 아버지 하느님 집을 떠나 방황하는, 불민하고 거역을 일삼는 자식들입니다. 주 하느님, 아버지 집에만 돌아오면 받아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다시는 아버지 집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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