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닉의 기념일, 말씀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복음 } 마태오복음서 16장 24-27절 …. [24]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5]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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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미닉(Dominic, 1170 – 1221)은 사제이며 ‘설교자들의 수도회’의 창시자였습니다. 그는 스페인 카스티유 지방의 구즈만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팔렌시아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학문도 좋아했지만, 1191년 전국적인 가뭄으로 말미암아 궁핍하게 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그가 모은 책들을 팔아 구제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도회에 소속하여 기도와 회개로 강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201년에 수도원의 부원장이 되었지만, 2년 후 그의 교구장 디에고 주교와 함께 알비겐세 이단에 넘어간 사람들을 바른 신앙으로 돌이키게 하려고, 교황의 특사단의 일원으로 프랑스, 독일과 덴마크에 이르는 먼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특사단원들은 엄중히 경고하는 방식으로 이단 교도들을 바로잡으려 하였지만, 도미닉은 그의 주교와 더불어 청빈과 기도생활을 하면서 조심스레 접근하여 신앙토론을 전개하면서 성서적 전통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했습니다.
알비겐세 이단들이 강조했던 것은, 하느님은 영이시므로 거룩한 분이시지만, 인간은 육신을 지녔으므로 죄 가운데 살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했으며, 결혼은 육체적인 것이니 부정하므로, ‘금욕주의’로 살라고 권장했습니다.
신앙토론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점차로 알비겐세 이단의 교세가 기울어지게 되자, 알비겐세 이단의 무리가 앙심을 품고 디에고 주교를 살해했습니다.
이 일로 교황은 격노하여, 알비겐세의 두목 카운트 레이먼드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약 5년간 지속된 이 전쟁으로 오히려 이단 무리들의 회유는 더욱 힘들어졌지만, 수없이 살상이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도미닉의 평화로운 복음전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도미닉은 1215년, 격전지였던 뚤루에 선교본부를 개설하고 설교자들을 양성하는 수도단체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회원들은 청빈을 서약하고, 언제 어느 곳에서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훈련했습니다.
그의 신념은 “설교자는 전하려는 말씀을 먼저 자신이 실천하지 않으면 설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철저한 훈련을 받은 설교자들을 기성교회가 있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로 역파송함으로써 기존의 교회들을 영적으로 일깨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수도회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출중한 신학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도미닉은 전도활동에 있어서 여성 교우들의 역할이 대단히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강조한 이였습니다. 또한 어느 교회든지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했습니다.
그는 그의 신학교육에서, 마태복음과 바울의 서신들을 설교자들이 설교의 소재로 삼을 수 있도록 훈련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13세기 교회에 겸허한 지도자로 도미닉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도 예수님의 제자로 청빈생활, 복음전도, 기도생활, 섬기는 자의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