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저녁기도 제1정과 } 빌립보서 1장 1-2절 …. [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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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사도 바울의 대부분의 편지에 보면, 편지 서두에 바울의 인사습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과 (아무아무)가 (어디)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라고.
“바울과 (아무아무)가” 라고 한 것은, 함께 있는 동역자의 이름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보다는, 사도 바울을 대신해서 편지를 대필해 주고 있었던 사람의 이름을 쓴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편지 속에 보면, 바울은 그의 지병인 안질 때문에 스스로 펜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편지들의 말미에 이르면, “나 바울이 친필로 이것을 씁니다.”(빌레몬서 1:19) “나 자신이 친필로 문안합니다. 이것이 모든 편지에 서명하는 표요..”(살후 3:17) “나 바울이 친필로 문안합니다.”(골 4:18)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직접 이렇게 큰 글자로 적습니다.”(갈 6:11)라고 하는 것을 보셨지요? 대필하던 분에게서 바울이 펜을 달라고 해서 쓴 대목입니다.
그의 안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갈라디아서 4장 13-15절에 나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 여러분은 할 수만 있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그가 거의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을 느낍니다.
이 고질을 치유 받기 위해 서원기도(*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서약하면서 간구하는 기도)를 세 차례 씩이나 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 하셨던 것입니다.(고후 12:9)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지병을 지니고 삽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길 기도하지만, 많은 경우 그대로 두십니다.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시면서, 하늘나라 가는 날까지 품고 가게 하십니다.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만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장치로 두신 것이라 봅니다. 도리어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끝까지 안고 가야 할 것입니다.
( 2 ) <은혜와 평화가 함께 있기를 빈다>가 어떤 의미의 인사일까요?
은혜는 희랍어로 ‘카리스’입니다. 이것은 ‘선물’이나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를 표하는 단어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세속적인 단어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평화’는 개역성경에서는 ‘평강’이라는 말로 번역했고, 구약시대로부터 사용되던 인사법 “샬롬”(희랍어 ‘에이레네’)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의 반대개념인 ‘평화’가 아니라, 서로 등지고 살다가 ‘화해’하고 ‘화목’하며 살게 된 모양새를 뜻합니다.
인간이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났지만,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삶을 사는 것을 “평화”(샬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한껏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서 살고, 한껏 하나님과 화목한 가운데 살기를” 빌어 주는 것이 “은혜와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뜻없이 나누는 ‘안녕하세요’나 ‘굿모닝’, ‘굿아프터눈’ 인사보다 얼마나 따뜻하고 은혜로운 인사법입니까?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서로 문안할 때면, 구원의 은혜 안에 사는 것이 확실한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누리고 사는지를 서로 묻고 감사를 나누는 인사법이 저희의 습관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