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루가복음서 6장 12-19절 …. [12] 그 무렵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날이 밝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그 중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셨다. [14] 열두 사도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와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혁명당원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후에 배반자가 된 가리옷 사람 유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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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신 일이 한 두 번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직계사도를 뽑으시는 중대한 일을 앞두시고 밤새 기도하셨다는 것은, 얼마나 이 일이 예수님의 메시아사역에 중대한 것임을 더욱 절감하게 만듭니다.
그 다음 날, 날이 밝자 예수님께서는 큰 무리의 제자들을 앞으로 모이게 해서 그 가운데 열둘을 고르시고 그들을 직계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이 때에 가리옷 유다도 그 열둘 중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통찰력이라면 스승을 배반할 가리옷 유다의 사람됨됨을 꿰뚫어보셨지 않을까 싶은데, 가리옷 유다를 열두 사도의 반열에 넣으신 이유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배반할 줄은 미처 모르셨을까요? 제가 19살 때, 신학과에 입학해서 신학생들과 자유토론을 할 때, 꽤 치열하게 이 문제를 토론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논란해도, 결론은 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가리옷 유다가 없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지 못하셨을 것 아니냐? 말하자면, 가리옷 유다의 악역은 나름대로 그의 공헌이었다, 이런 엉뚱한, 유다를 두둔하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연극 대본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셨겠습니까? 누구는 어느 장면에서 어떤 대사를 읊으며 어떻게 행동하는 것임을 미리 정해 놓으셨을 리가 없습니다.
지금껏 세상을 조금 살다 보니까, 악역은 따로 없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세상 사람이 다 성실한 사도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서, 가리옷 유다도 역시 성실한 사도일 수도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유다에게만 악역을 맡겼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외없이 스승 예수님을 배반할 소질을 가지고 있는 아담의 후예들이지, 가리옷 유다 만이 배반의 소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직 인간으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우리들 누구나, 하느님의 성실한 자녀로 살 것인가, 배반의 사람이 될 것인가, 양자택일의 선택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가리옷 유다가 배반의 행동으로 들어가던 때가, 모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전날 저녁식사 자리에 앉았던 때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가리옷 유다의 마음 속에 계획하고 있는 바를 꿰뚫어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요 13:27) 이것이 배반을 종용하시는 말씀이셨을까요?
이 말씀을 하실 때에도, 가리옷 유다가 성실한 사람으로 살 것인지, 배반으로 갈 것인지가, 아직 자신의 선택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 유다야, 나를 배반하면 너는 영원히 저주를 받을 인간이 된다.’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83년 간을 교회 안에서 저를 살게 하신 예수님께서, 아직도 저에게서 자유선택권을 취소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제 속을 들여다보시면서도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라고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배반을 종용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도> “오, 성령님! 이 불충한 것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반석이신 하느님의 편에 굳게 서서, 바른 길로만 행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