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소리’치 & ‘통곡소리’치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테오 복음서 11장 16-19절 ….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리오?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여러분은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통곡을 해도 여러분은 가슴을 치지 않았습니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여러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마귀가 들렸다’ 고.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저 사람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 라고. 그러나 지혜가 옳음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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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예전적교회 가운데 예전적교회인 대한성공회는 주일에 반드시 노래로 감사성찬례를 드립니다. 그런데 집전을 하는 사제가 음치일 경우에는 정말 참기가 힘듭니다. 틀리는 음을 내는 곳에 가서는 반드시 그 틀린 음을 다시 내기 때문입니다.

아예 그가 부르는 방식대로 악보를 고쳐서 부르는 방법은 없을까 하며 고민해 볼 때도 있습니다.

( 2 ) 음치보다 심각한 것은 ‘감동치’ (피리소리치 & 통곡소리치)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세계에 오셔서 하늘 나라 복음을 전파하고 계실 때에, 아무리 목이 터지게 외쳐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청중들을 보시며,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으면 ‘감동치’(“피리소리를 들어도 춤출 줄 모르고, 통곡소리를 들어도 함께 울어줄 줄 모르는 감동이 없는 자”)라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 소위 ‘인공지능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수준은 어떤 것일까요? 인간성을 되찾자던 문예부흥기와 낭만주의가 꽃피우던 시대를 지나, 산업혁명으로 우리 산업이 ‘컨베이어 시스템’화 되고 나서도, 우리 인간은 오히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의 무디어진 감각은, 하루에도 수 천 개의 놀랍고 새로운 정보가 눈 앞을 지나가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수 만 번을 반복하는 경고음(‘전쟁의 위협’, ‘이념적 위협’, ‘환경의 위협’, ‘경제의 위협’, ‘사회악의 위협’ 등등)에 미동도 하지 않는 우리들의 감각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우리의 상황은 ‘날 잡아잡수 시대’ 를 살고 있다고 보입니다. ‘우리 운명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진정 감동치의 극치입니다.

( 3 ) 캐나다 새스커툰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 이런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지방은 겨울에 엄청 눈이 많이 내리는데, 폭설이 내리는 때면, 서로가 아침에 반드시 이웃집 문을 노크해서, ‘별 일 없습니까?’ 문안하는 불문법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해, 밤에 약 2미터 정도의 폭설이 내려서 온 마을이 눈에 덮여버렸습니다. 이웃집까지 제설작업을 하고 가서 문을 노크하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날이 밝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이웃집까지 엉성하게라도 제설작업을 하고 문안을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동네에서 좀 거리가 있는 한 할아버지의 집에는 도저히 접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그 집은 포기하자고 했지만, 한 소년은 그 할아버지의 집은 이런 날 누구보다 문안이 필요하다면서 포기하지 않고 혼자 작업한 끝에 마침내 제설작업에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문을 두드릴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소리쳤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소년은 문을 더욱 힘차게 두드리며 악을 썼습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때 할아버지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년은 동네 어른들을 불러, 할아버지를 눈 속에서 끌어내어 구조했습니다.

( 4 ) 우리 영혼의 ‘감동치’가 고쳐지지 않는 한, 우리는 복음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해서, 결국 우리 주님의 구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감동치’의 치유는 회개와 기도로부터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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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영혼이 목마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민감함을 회복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영적 감응력이 살아 있어서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붙잡을 수 있게 하옵소서. 깨어있는 영혼을 유지하도록 성령님께 날마다 간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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