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보아, 하나님을 압니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서신 } 요한1서 2장 22-25절 ….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의 적대자입니다. [23]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이요, 아들을 시인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또한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24]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속에 간직하십시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그것이 여러분 속에 있으면, 여러분도 아들과 아버지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은 그가 친히 우리에게 주신 약속인데,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 복음 } 요한복음서 1장 23-28절 …. [23]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24]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그들이 또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시오?” [26]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 [27] 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소.” [28]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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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위의 두 가지 본문을 보면, [복음본문]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군중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서신본문]에서는, 요한복음서의 저자이며,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한 내용의 일부를 봅니다.

중요한 골자는 예수님은 예사로운 분이 아니고, 천상에서 내리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은 한 분 하나님인데, 인간이 경험한 하나님은 세 분으로, 실상 그 세 분은 각각 다른 분이 아니라 한 분, 곧 ‘삼위일체 하나님’ 으로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분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또 한 분은 인간이 되어오신 하나님으로, 또 한 분은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주후 4세기에 기독교 신앙에 혼동을 일으킨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아리우스파’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 가운데 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인간이나 동물들처럼 자식을 낳는 그런 존재가 아니므로,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또 하나의 하나님을 낳는 일, 또는 하나의 하나님이 스스로 새로 생겨나는 그런 하나님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는 절대적으로 피조물이고, 다만 피조물 가운데 최상의 피조물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아리우스의 이론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이래 3백 년 동안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심” 을 믿어왔던 기독교인들이 아리우스파에 속아서, 예수는 구약의 예언자들의 반열에 속하는 정도의 인간일 뿐이지, 그를 신격화하는 일은 공연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주후 4세기의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을 때에, ‘바실’(Basil, 약 330 – 379, 후일 카이사랴 교구의 주교가 됨)이라는 분이 아리우스파의 그릇된 주장을 여지없이 논박함으로,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기독교 신앙의 전통을 바로잡았습니다.

바실 주교의 논박은 “철학적 논리로 하나님을 재단하려는 의도는 대단히 위험스런 시도이다.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의 물상적 경험이나 철학적 논리로 묶으려 하느냐?” 는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낳으심’은, 하나님의 비시간성-비물질성 안에서 이해해야 하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 인간의 두뇌로, 천상의 존재를 파악하려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단 논쟁을 여지없이 물리친 바실 주교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자 집안에서 자라나며, 가족들이 모두 교회의 지도적 입장에 있어서, 어린 바실을 콘스탄티노플로 보내서 당시의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육을 받아 지도자가 되었다기보다, 그의 생각이 애당초 진리를 탐구하려면 은둔수도생활을 통하여 경건훈련을 쌓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30세 무렵에 그는 자기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고향 땅에 수도원을 설립하여 거기서 금욕과 성경연구로 엄격한 수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후 34세에 사제가 되었고, 그의 교리강해가 비범하여 온 교구가 그의 신앙강연을 들으러 따라다녔습니다. 6년 후 그는 카이사랴 교구장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건축의 대가였으며, 병원과 구제기관들을 직접 설계했습니다. 그리하여 나환자들,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에 남다른 능동적인 활약을 펼쳐 구제활동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여러 방면에 체력을 과하게 소모했던지, 바실 주교는 49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를 교회가 기념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고, 따르는 일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을 통해서임을 믿습니다. 저희의 오늘의 삶이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로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고, 사랑이시며, 구원이심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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