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향하여 사신 예수

<공현 후 4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미가서 6장 6-8절 …. [6] “높이 계시는 하느님 야훼께 예배를 드리려면, 무엇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까? 번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까? [7] 숫양 몇 천 마리 바치면 야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거역하기만 하던 죄를 벗으려면, 맏아들이라도 바쳐야 합니까? 이 죽을 죄를 벗으려면, 이 몸에서 난 자식이라도 바쳐야 합니까?” [8]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 = * ( 1 ) 나라를 위하여 아들을 바친 사람은 진정한 애국자일 것입니다. 하느님께 순종하여, 아들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아브라함(창 22:1-14)을 진정한 예배자로 인정하셨습니다.

독생자를, 인류에게 대속 제물로 내어주신 하느님은 진실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바라시는 삶의 표준을, 예언자 중의 예언자인 미가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 1) <정의롭게 살라>, 2) 하느님의 은덕에 보답하며 살라. <자비의 생활>, 3) 조심스럽게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라. <겸손한 자세로> (본문 8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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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시 } 시편 15편 …. [1] 야훼여! 당신 장막에서 살 자 누구입니까? 당신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자 누구입니까? [2] 허물없이 정직하게 살며 마음으로부터 진실을 말하고 [3] 남을 모함하지 않는 사람, 이웃을 해치지 않고, 친지를 모욕하지 않으며, [4] 야훼 눈 밖에 난 자를 얕보되, 야훼 두려워하는 이를 높이는 사람, 손해를 보아도 맹세를 지키고, [5] 돈놀이하지 않으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지 않는 사람. 이렇게 사는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 = * ( 2 ) ‘장막’은, 성전을 돌로 짓기 이전, 성전을 대신했던 천막을 ‘장막’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산’은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오늘의 성시는, 하느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아갈 자가, 평소에 어떤 삶의 자세로 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정직하며, 진실되고, 남을 모함하여 모욕을 주는 일이 없을 것. 하느님을 경홀히 여기는 자들은 사귀지 말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존경하라. 맹세한 바를 이행하고,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말며, 뇌물을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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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I 고린토 1장 22-24, 27, 29, 31절 …. [22]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24] 그러나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 [29]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 [31] 그러므로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 = * ( 3 )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부득불, 유다인들이 로마 총독의 손을 빌어 메시아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면 될수록 유다인들에게는 망신스러운 일입니다.

또 희랍사람 처럼,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말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이데아’의 세계)의 하느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가 십자가 형을 당하셨다는 말은, 그들의 철학으로는 납득이 안된다’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유다인에게도, 철학을 자랑하는 희랍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은 조롱거리가 된다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만민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자랑합니다.(본문 31절) 이것이 오늘 서신 본문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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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태오 복음서 5장 3-12절 ….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 = * ( 4 ) 흔히 이 본문을 ‘산상보훈(마 5-7장)의 서문’이라고도 말하고, ‘팔복’이라고도 말합니다. 가만히 구조를 들여다 보면, 여덟가지 복 가운데, 앞의 여섯 가지는 인간의 성품이나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고, 일곱번째와 여덟번째는 어떤 삶의 지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일곱번째 복의 내용을 보면, ‘평화(* 샬롬, 화해)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했고, 여덟번째는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 곧 ‘나’(* 예수, 또는 하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받는 ‘너희’는 복이 있다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공적인 생애 벽두에, 장차 당하실 십자가를 멀리 내다보며, 자기 정체성을 천명하신 내용이었습니다.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서로 등진 민족들 사이에 다툼을 없애는 일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도 되겠지만, 근원적 평화는 인간이 하느님과 화해하는 데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위의 복음본문은, 하느님이 인류와 화해를 이루시고자, 대속의 제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신 선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을 규합하려는 의도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됨을 알리셨고(마 4:17, 23), 그 나라 백성되는 사람들의 성격을 말씀하기를, “마음이 가난한 사람(겸손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상실한 하늘나라가 그리워 탄식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하느님께 순종적인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정의로운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사기성이 없는 사람)”이어야 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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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장차 지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계셨음을 생각하며 저희의 부족한 삶을 회개합니다. 육신의 복락을 위한 저희의 집념을 버리게 하시고, 오로지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기를 힘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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