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아버지’, ‘지도자’는 한 분뿐

<사순절 제12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마태오 복음서 23장 1-4, 6-12절 …. [1] 그 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7]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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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오늘의 복음말씀(8-10절)에서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하신 말씀에 초점을 맞춥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는 말을 예수님께서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스승’, ‘아버지’, ‘지도자’라는 말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부르고 또 들으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학교에서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도 있었으니 평생 ‘스승’ 소리를 듣고 있고, 딸과 아들이 있으니 평생 ‘아버지’ 소리를 듣는 것이 응당 옳은 일인 줄 알았으며, 무슨 ‘장’, 무슨 ‘위원장’, 무슨 ‘대표’를 하는 동안 ‘지도자’의 변형된 호칭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으로 불러올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를 금하셨는데도, 이 호칭들을 버젓이 사용하고 있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그래서 희랍어 원문을 찾아 보았습니다. ‘스승’ 이라고 한 말은 ‘Rabbi’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서 그 언어학적 의미는 ‘위대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유대인 사회에서 관용적으로 ‘율법 선생’ 또는 ‘영적 교사’를 일컬을 때에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진리를 가르치실 분은 한 분 예수님 밖에 계시지 않고, 소위 ‘교사, 선생, 교수’라는 이들은 다만 스승 흉내를 내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금지된 단어는 ‘아버지’(pater)라는 말이었습니다. 통상 ‘낳아준 아버지’를 ‘파테르’라고 합니다마는, ‘선조’를 뜻하는 때에도 이 단어를 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였든 ‘선조’였든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파테르’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조들이나 아버지는 나의 생명이 있게 한 매개체일 수는 있지만, 진정 내 생명이 있게 하신 분은 오로지 하늘에 계신 하느님 한 분뿐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셋째로 금지된 단어는 ‘지도자’(희 kathegetes, 영 teacher, master) 라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을 가르쳐서 진리를 알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할 분은 오로지 메시아(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아주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물론 거의 모든 주석서들이 이것은 예수님의 계명적인 지시라고는 볼 수 없고, 다만 언어의 남용을 삼가라는 교훈이셨다고 느슨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순절을 사는 우리들이,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회개할 바가 있습니다. 뭘 좀 배웠다고 남을 가르치려 든다든지, 또는 타인에 대한 경칭을 괜스레 격상함으로써 상대방을 자만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와서는 안됨을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목사나 사제들에게 영어로 ‘Reverened’(존경하올)이라는 경칭을 붙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성직의 계급에 따라서 차이를 두고 Very reverened, Most Reverened, Honorable 이라고 정하고서, 왜 똑바로 안 붙였느냐를 따지는 예도 있으니 하느님 보시기에 진정 송구스런 일입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자만심이 아직 저를 깊은 시험에 빠지게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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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에서 겸손의 본을 보인 사람 >> 챠드 주교 (Chad, Bishop of Lichfield, ? – 672)

챠드는 영국 노덤브리아 출신으로, 젊은 시절 아일랜드로 건너가 수도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일랜드 수도원들은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었고, 성경공부가 높은 수준이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와 교회행정상 로마교구의 손이 영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여행자들이나 상인들을 비롯한 여러 자발적 전도자들에 의하여 복음이 전해져서 영국 내에 형성된 교회가 있었는데, 이들을 ‘켈트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사에서 호칭하고 있습니다.

주후 664년에 이르러서야 로마교구는, 영국 내의 교회의 신앙과 직제를 하나의 전통 속에 포섭할 생각으로, 켈트 교회가 챠드를 리취몬드의 주교로 세웠을 때, 이를 ‘절차상 문제가 있다’ 하여, 용인하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챠드는 한 곳에 두 교회의 전통이 서로 엇갈리는 일을 염려하여, 로마교구의 편에 있었던 캔터베리 대주교의 의견을 따라, 주교직을 사임하고 물러앉았습니다. 그의 이런 겸손이 켈트 교회와 로마교구가 큰 갈등에 휘말릴 위험에서 영국교회를 건져냈다 하여 후일의 신도들에게 크게 칭송을 받습니다.

그래서 캔터베리 대주교는 챠드를 리취몬드의 주교로 임명함으로써, 앵글로-색슨 족의 교회가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데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챠드의 기념일은 바로 어제(3월 2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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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언제 어디서든 겸허한 마음과 자세를 취함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 없이 살게 하옵소서. 주 성령님께서 저희들의 생각과 말의 발상이 늘 겸손한 동기에서 출발하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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