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로 이런 무정한 자들!

<사순절 제13일, 본문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복음 } 마태복음서 20장 17-19 ….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열두 제자를 따로 곁에 불러놓으시고, 길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보아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들은 그(*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며, [19]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서,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달아서 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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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1 )>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가시던 길에서 예수님은 세 번째로 똑같은 예고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예루살렘의 권세자들, 곧 그 곳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의 최고 율법학자들에게 사형선고를 받게 될 것이고, 십자가 형을 받아 죽을 것인데, 그렇지만,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21, 22-23, 20:17-19 참고)

아무리 듣기 거북한 내용의 예고라 할지라도,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엄숙한 죽음의 예언을 하시는 것이라면 좀 착념하여 듣고 나서, 왜 그런 억울한 죽음을 당하셔야 하는지, 또 사흘 후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물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세 번에 걸친 죽음의 예고가 제자들에게 별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기들도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태도도 아니었고, 그런 위기가 오면 도망치겠다는 솔직한 토로를 하지도 않았고, 다만 묵묵히 듣고 만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설마 죽은 사람들도 살려내셨던 우리 선생님께서 그런 무참한 죽음을 당하시면서 아무 대책 없이 계시는 것은 아니시겠지.. 우리들의 안전대책도 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외로우셨습니다. 아무리 주위에 제자들을 비롯한 따르는 무리가 여럿 있었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할까요, 철저한 고독을 맛보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몸으로 겪어내셔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계시는데도, 꼼짝않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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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태복음서 20장 20-24절 ….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다가와서 절하며, 무엇인가를 청하였다. [2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여자가 대답하였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마실 수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내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24]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게 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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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2 )> 예루살렘을 향하여 계속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전에 없이 예수님 앞에 가까이 다가와서 긴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인즉, 이제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평소 말씀하시던 하나님의 나라가 개국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왕위에 오르시게 되면, 아무래도 주위에 대신들을 갖추어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습니까?”고 예수님께서 물으시자, “예, 그 때가 되면, 제 아들 둘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쪽에, 또 하나는 주님의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방금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주님께서 심한 고난을 당하시고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 형을 당하신다고 했는데도, 무슨 정신으로 자기 자식들의 벼슬자리를 걱정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기가 막혔습니다. 더구나 3년을 곁에서 따라다니던 야고보와 요한까지 자기 어머니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어떤 하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당신들이 내가 마실 쓴 잔을 마실 수 있단 말이요?”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그 ‘쓴 잔’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목에 힘을 주고 대답했습니다. “예, 마실 수 있습니다.”

한 번 더 어처구니 없는 느낌을 받으면서 주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맞소. 당신들도 그 잔을 마실 것이오. 하지만…. 내 좌-우편 자리에 앉을 사람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정하고 계십니다. 너무 집념을 두지 마시오.” 라고 달래셨습니다.

실상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중 누구보다 자기 맘을 알아준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요한마저, 이 고민스러운 예루살렘으로의 여행길에서 위로의 말은 없이, 자신의 앞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앞질러 교섭을 하고 있다는 괘씸한 생각에 장탄식을 뱉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아이고, 이 못 믿을 것들아! 내가 너희를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그러나 믿음의 예수님은 입을 꾸욱 다물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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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태복음서 20장 25-28절 …. [25]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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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3 )>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그들의 어머니를 대동하고 예수님을 따로 찾아뵙고, 좌의정 우의정 자리를 미리 교섭하더라는 정보가 모든 제자들에게 퍼지고 나서, 한바탕 제자들 사이에 서로 분통 터뜨리는 욕설들이 오갔습니다.

그 몰골을 보신 주님께서 모든 제자들을 불러모아 조용히 타이르셨습니다. “‘사람의 아들’ 곧 메시아로 세상에 온 나는, 이 땅에다 나의 나라를 건설할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오.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고,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오. 나는 십자가에 올라 내 몸을 제물로 드리는 속죄제를 드려야 하오. 나는 섬김을 받는 왕이 되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오, 나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소.”

한껏 마음 속에 차 오르는 고독과 슬픔과 서운함을 억누르면서 이런 말씀을 들려 주고 계셨습니다. 그 때에도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 예수님께서 당하실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홀로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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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일생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따랐어도, 그 옛날 주님의 제자들 못지 않게 주님의 마음을 알아드리지 못한 채,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가 늘 깨어 기도함으로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품으신 뜻을 깨닫게 하시며, 주 성령님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미력이나마 섬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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