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키너 기념일,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구약 } 열왕기 상 19장 11-18절 …. [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12]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 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 [16] …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 [18]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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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하나님께서, ‘죽고 싶을 정도로 고독했던’ 엘리야 선지자에게 주셨던 격려의 말씀은 모든 시대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외로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무리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당장 해치울 것 같이 덤벼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시면, 결코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실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군사 ‘칠천 명’ 곧 ‘수많은 우리들의 우군’을 준비해 두고 계심을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잃지 말고 계속 용진하십시다.
( 2 ) 오늘 우리는 영국 국교회와 미국성공회가 어떤 관계인가를 역사를 통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미국성공회의 뿌리는 영국 국교인 영국성공회와 스콧틀랜드 성공회입니다. 미국성공회의 신앙의 뿌리는 스콧틀랜드의 성공회 주교 존 스키너(John Skinner)2세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존 스키너 1세(1721 – 1807)는 스콧틀랜드 애버딘셔(Aberdeenshire)에서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신학공부를 마치고 성직 안수를 스콧틀랜드 성공회에서 받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를 그가 명확하게 써 놓은 글이 없어서, 다만 역사가들이 상상하는 설명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존 스키너 1세가 시인으로 살면서, 광범위한 독서와 친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의 마음 속에, 초대교회로부터의 전해진 전통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즉, 감독(주교)의 감독 아래, 한 지방에 세워진 형제 교회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방식이, 진정 교회들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느껴졌습니다. 특별히 말씀중심의 개혁주의 교회로서 예전도 존중하는 전통에 속하기를 바라서, 스콧틀랜드성공회에 입적했던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혁주의 장로교단이 대세인 스콧틀랜드에서는 참으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성공회 전통을 따른다는 것은, ‘친영국적’ 사고방식으로 의심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평생 성공회의 사제로서 일관했습니다.
그의 65년의 목회생활 동안에, 스콧틀랜드 군인들의 공격을 받아 그의 교회가 전소된 일도 있었고, 집과 재산을 모두 압류 당한 일도 있었으며, ‘불법집회’ 혐의로 6개월간 투옥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 3 ) 존 스키너 1세의 아들 존 스키너 2세(1744 – 1816)는 자기 집이 차압 당하고, 사제인 아버지가 억울하게 투옥되는 과정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또한 비밀리에 아버지와 교우들이 주일예배를 드리는 속에서 부제(Deacon, 1763), 사제(Priest, 1764)를 거쳐, 보좌주교(1782)가 되었고, 1788년에는 스콧틀랜드 성공회의 수석주교가 되었습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스콧틀랜드의 정치상황이 점차 나아지고, 스콧틀랜드 성공회의 위상도 점차 나아져서, 종교적 박해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 4 )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부터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게 되면서, 영국과 미국 사이에는 치열한 ‘독립전쟁’이 있었고, 그 결과로 신생 미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기후조건이 나빴거나 산업이 피폐한 나라일수록 많은 수의 국민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특별히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이들이 미국 국민이 되면서, 미국의 다수 개신교도들이 성공회의 교인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최초의 미국 성공회의 첫 주교로 새무엘 시버리(Samuel Seabury, 1729 – 1796)를 주교후보로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회의 성직자는 주교가 안수해야 하고, 특별히 주교의 경우는 3인 이상의 주교가 안수해야 합법적 주교가 되므로, 시버리는 주교 안수를 받으려고 영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주교가 되려면, 영국 국왕 조지 3세에게 충성서약을 해야 했습니다. 영국 국왕은 미국과는 방금 전쟁을 끝낸 상태여서, 미국 국민인 시버리 자신도 충성서약을 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충성서약의 절차’란 도저히 난감했습니다.
이때, 스콧틀랜드의 성공회 주교 세 사람이 시버리 주교후보를 돕겠다고 자원했습니다. 다만 주교후보인 시버리가, 예전적 교회 전통 못지않게 말씀 중심의 개혁주의 신앙을 보전해 줄 것을 약속해 준다면 안수해 줄 의사를 표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 소개했던 스콧틀랜드성공회 수석주교 존 스키너2세를 비롯한 로벗 킬구어(Robert Kilgour), 아더 페트리(Arthur Petrie) 3인의 주교들이 그를 주교로 안수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1784년 11월 14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영국성공회는, 장차 미국의 성공회가 영구히 영국관구로부터 벗어날 것을 우려하여, 왕실과 협의하여, 2년 후인 1786년, 미국 성공회의 주교후보들의 경우 영국 국왕에게 충성서약을 하지 않아도 서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쳤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명의 주교가 미국에서 탄생하게 되었고, 이윽고 많은 교구가 마련되고, 관구형성이 되어, 240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명칭도, 세계적 성공회 명칭인 “The Church of England in (국가명칭)”으로 표기하는 방식을 버리고, “The Episcopal(주교 감독 제도의) Church of U.S.A., ECUSA)” 를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 5 ) 말하자면 미국 성공회는 영국성공회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신앙 전통으로는 스콧틀랜드와 영국의 전통을 따르게 되었고, 영국성공회와 함께 세계성공회의 지도적인 위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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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며 일하는 한, 저희는 결코 외롭지 않음을 실상으로 알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일을 벌여 놓고 실망하는 일이 없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저희의 동역자 ‘칠천 명’을 이미 예비해 두고 계심을 믿고 날마다 전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