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2과 } 요한복음서 6장 41-51절 …. [41] 이 때 유다인들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못마땅해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42]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터인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말이 되는가?” [43]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하냐?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45] 예언서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온다. [46]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이밖에는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없다. [47] 정말 잘 들어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50]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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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최근에 의사가 저에게 당뇨를 조심하라면서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식탁에서의 치열한 투쟁(?)을 권하는 소책자도 주었습니다. 음식이 생명을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음식 때문에 건강을 잃을 수도 있는 많은 경우들이 그 소책자에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영생하는 음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본문 51절)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무엇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입니까? 예수님은, 당신이 ‘영생을 주는 빵’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감사성찬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몸을 먹습니다.
사회철학자 포이에르바흐는 ‘먹는 자와 먹히는 것은 동질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회현상을 설명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의 구원의 도리를 설명한 말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먹은 사람은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양식으로 하늘로부터 세상에 내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 양식으로 인류 앞에 상을 차려 주시던 때에, 그의 육신의 어머니 성모께서 참담한 심정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던 것을 애통하는 ‘스타바트 마테르’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가/
십자가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 계셨네./
그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있을 동안에.”
비록 짧은 노래지만, 이 노래에 담긴 여운은 우리들을 깊은 통회 속에 잠기게 합니다. 이 노랫말의 배경은 요한복음 19장 25절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클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만민에게 생명을 주시는 음식(빵)이 되시기 위하여 온 몸으로 성찬을 차리시던 우리 구주 예수님과 그 현장을 지키던 주님의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빵이다.’ 하신 말씀은 ‘비타민은 중요한 영양소다.’ 라는 투의 서술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예수님)의 삶이 자기의 삶이 되기를 바라서, 나의 죽음 속에서 자신의 죽음이 동시에 있었던 것을 인식한 자들에게는 내가 영원한 생명을 주리라.’ 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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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예수님, 저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고통과 치욕을 당하시면서 저희의 양식이 되셨습니다. 저희들이 감히 주님의 성찬에 나아가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먹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몸의 주인이 되시고 온전히 머물러 계셔서, 저희가 영생에 이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