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봐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새번역)

{ 복음 } 누가복음서 6장 6-11절 ….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시는데, 거기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지 엿보고 있었다.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 서라.” 그래서 그는 일어나서 섰다. [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물어 보겠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건지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10] 예수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서, 그 사람에게 명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그렇게 하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11] 그들은 화가 잔뜩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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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우리가 시를 읽을 때면, 시 전체를 읽습니다. 한 구절만 읽지 않지요. 편지를 읽을 때도 어느 한 구절만 읽지 않지요. 전체를 읽고 나서, 왜 이 편지를 보냈는지, 보낸 사람의 목적을 깨닫는 것 아닙니까?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분량이 많아서 그렇지, 성경 전체를 놓고 이해해야 똑바로 보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빌면서, 종합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지, 한 두 구절만 뽑아 읽으면서 그것이 전체인 양, 생각하면 크게 과오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안식일 법이 그 한 예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고,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안식일에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쉬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안식일 법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율법이지, 인간을 속박하기 위한 율법이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노동을 하는가 안 하는가를 살피면서, 시비거리를 찾고 있었던 율법주의자들은 안식일 법을 가지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까지 못살게 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을 편파적으로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편지‘(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을 못살게 굴던 율법주의자들의 후예로 보입니다. 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가)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이 하십시오.”(엡 5:22) 심지어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남편에게 복종하라’로 번역했습니다. 남편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인용되기 쉬운 구절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바로 윗 구절인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엡 5:21) 의 연결선상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남편에게만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순종하라’고 했으니, 아내에게도 대등한 권위가 있지요.

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마 6:15) 이 구절을 가지고, 피해자로 억울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용서를 강요한다면, 이는 마치 가해자의 죄는 무조건 용서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릴 수가 있습니다.

이 구절을 사용해서 피해자를 더 위험한 인간관계 속으로 떨어뜨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출 20:12) 이 말씀으로 부모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을 사용하려면, “또 아버지 된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가르치십시오.”(엡 6:4)라는 구절도 성경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라)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고전 14:34) 이 구절만 가지고 여자들의 입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같은 고린도전서 11장 5절에서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을 합당하지 않다고 한 것을 보면,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바울 사도도 허락했다는 것을, 문맥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마)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살후 3:10) 이 말씀으로 노동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먹을 것을 주지 말라는 뜻으로 풀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서 못하는 이들도 있고, 장애자나 무능력자로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말씀은, 의도적으로 노동을 기피하면서도 자기 가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훈계하는 말입니다.

바)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잠 13:24) 이것을, 자기 자식에게는 폭력을 가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풀어서는 안됩니다.

‘매’라는 어휘를 사용한 것은, 물리적으로 자식들의 신체에 회초리나 막대기로 쳐서 고통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훈육’과 ‘교정’을 위한 일체의 과정을 묵시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롬 14:4) 이 구절을 가지고, ‘주님의 종’을 자처하는 성직 맡은 사람들이, ‘주님 외에는 나를 정죄할 수 없다.’며, 면책특권이 있는 양, 성경을 인용하는 예를 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종들의 과오의 책임을 누구보다 가혹하게 물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약 3:1, 말 2:1-9)

성경인용의 잘못된 예는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어떻든 성경은 전체를 놓고 공부해야 하는 책이지, 육법전서처럼 한 두 구절을 가지고 사람을 심판하는 일에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사람을 살리고자 하나님께서 주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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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 인류들을 구원하시고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을 심판하는 일에 사용하지 말게 하옵소서. 저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목적에 맞도록 배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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