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이라는 우리의 신앙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미가서 2장 1-4, 12-13절 (새번역)

[1]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2]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3]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였으니, 이 재앙을 너희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4] 그 날이 오면, … [12]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를 다 모으겠다.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 모으겠다. 내가 너희를 우리로 돌아오는 양 떼처럼 모으겠다. 양 떼로 가득 찬 초장과 같이, 너희의 땅이 다시 백성으로 가득 찰 것이다. [13]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성문들을 부수고, 바깥으로 나갈 것이다. 그들의 왕이 앞장 서서 걸어가며 나 주가 선두에 서서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

* * * *

어렸을 적에는, 성탄일이 대단히 기다려졌습니다. 한껏 들뜬 축제의 기분으로.

방학은, 초중고 학생시절에 가장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특별히 여름방학은 하루 하루 지나가는 것이 너무도 아깝고 아쉬웠습니다.

저처럼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나와서 살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간 오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늘 소원이, “남북통일 마침내 성취” 를 알리는 일간신문 호외를, 서울 도로 한 복판에서 읽는 날을 맞는 것이라 했었는데, 종내 못 보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꿈에도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날이 오면” 이라는 소원입니다. 이 신앙은 구약의 예언자들과 모든 유대인들의 신앙이었고, 지난 2천 년 동안 모든 기독교인들의 신앙이었고, 이윽고 우리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빠 이욤’ (bba-y-yom) 이라는 말은, “그날에” 로 번역할 수도 있고, “그 날이 오면” 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이 ‘빠 이욤’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총괄적으로 예언합니다. 가슴 떨리게 하는 구호입니다. ‘빠 이욤’!

오늘날 우리도 ‘빠 이욤’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그 날’ 을 향한 소원이 무엇입니까? 코로나19를 완전히 벗어난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크라이나전쟁이 제발 확전되지 말고, 전쟁도발자의 악한 의지가 꺾여, 포화가 멎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가서가 말하는, ‘빠 이욤’ 의 fantasy 는 아주 구체적입니다. 관념적인 소망이 아닙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던 정치지도자들의 횡포가 처벌받고(3:1-3), 불성실했던 종교지도자들(3:11)과 예언자들(3:5-7)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으며, 부패한 공직자들과 사업가들, 그리고 폭력으로 힘없는 자의 것을 빼앗던 자들(6:10-13)에 대한 가혹한 심판이 있을 날이 바로 ‘그 날’, ‘빠 이욤’ 입니다.

예언자 미가 시대에는, 입으로는 ‘그 날’ 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몸은 ‘그 날’ 이 오는 것을 저지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엄정하신 심판은 이런 자들을 분명히 구별해 내실 것입니다. 옥석을 가리듯 하실 것입니다. 모든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온 ‘남은 자’ 들에 대한 포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남은 자들로 오늘을 살고자 애쓰는 우리 모두들의 ‘빠 이욤’ 신앙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간절한 마음으로 ‘그 날이 오면’ 을 새기며 살아가는 저희 무리를, 그 날이 오기까지 지켜 주시옵소서. 의로움과 자애로움과 거룩함을 포기하지 않게 지켜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끝까지 소망을 품고 ‘그 날’을 기다려 온 무리들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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