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 1 } 이사야서 25장 6, 8절. [6]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 [8]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 2 } 요한계시록 21장 3-5절. [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니, …” [5]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 3 } 요한복음 11장 42-44절. [42] “…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외치시니, [44] 죽었던 사람이 나왔다. 손발은 천으로 감겨 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여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를 풀어서,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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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연극 ‘우리 읍내’ 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합니다. 총 3막으로 되어 있는데, 3막에서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한 동네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나옵니다.
단 하루라도 삶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면, 가서, 서로 따뜻하게 위로, 격려하고, 애틋하게 정을 나누면서 살다 오면 얼마나 좋을까며 안타까와 합니다. 산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오늘이, 죽은 사람에게는 보석보다 값진 것임을 알려 줍니다.
교회력으로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이르는 기간은, 교회가 ‘기념일이 정해지지 않은 뭇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11월 1일), ‘모든 별세자의 날’(11월 2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기독교권에서는 소위 ‘별세자들이 산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는 날 – 핼로윈 데이’를 지내는 문화마저 생겨났습니다.
이 ‘핼로윈 데이’에,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서 나온 듯이 보이는 가면을 쓰고, ‘살아 생전에 착하게 사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메시지를 서로 나눕니다. 이런 풍습이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잘못 전해져서, 얼굴을 가리고, 평소 못하던 짓을 하는 문화로 변질되었습니다.
뜻밖에 대형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근원적 책임의 소재가 기독교에 있다고 말한다면, 그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량한 자식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고, 인간계의 모든 잘못의 책임은, 인간을 내신 하나님께 있다는 억지야 무엇으로 막겠습니까?
우리 민족의 전통적 페스티벌 류의 문화를 재생시켜 보려고 하지만, 겉모양은 재생이 된다 하더라도, ‘흥’은 재생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이 그나마 남의 것을 빌려다 즐겨 보려다가, 하룻밤에 백 오십 여명이 숨져갔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안타깝습니다.
진정, 이 세상에서 살던 날들이 그리도 귀한 날들이었다는 메시지를, 그 죽어간 영혼들과 함께 지금 다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기도> 주 하나님, 저희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저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 훈련을 받아 하늘 나라에 이르게 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한 밤에 같은 곳에서 덧없이 죽어간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위로해 주시고, 긍휼을 베푸소서. 유가족과 저희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주시며, 생명의 가치를 엄숙하게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