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설이 하나님의 순리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 1 } 빌립보서 3장 7-9절. [7]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 오물로 여깁니다.> (본문 7, 8절) 이 인간적 역설이 하나님의 복음증거자가 된 사도 바울의 전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고상한 취미나, 대단한 학식이나, 값비싼 보물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장애가 된다면, 오물 버리듯 내버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세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하늘나라는 마치 ‘밭에 감추인 보석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덮어 두고,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과 같다’ (마13:44) 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 밭의 가치를 모르지만, 그 사람은 자기 소유를 다 팔고서라도 그 밭을 살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고귀함을 아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이렇게 확실합니다.

{ 2 } 시편 105편 3-5절. [3] … 주님을 찾는 이들은 기뻐하여라. [4] 주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여라. [5]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여라. 그 이적을 기억하고, 내리신 판단을 생각하여라.

** 저는 한때, 무신론자 버트란드 럿셀이나, ‘초극’의 철학자 니체의 얼굴을 지면에서 보게 되면 반가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얼굴이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지금 반가운 그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돌아온 아들’을 그린 이태리 화가 무리요의 그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그린 반 고흐의 그림, 성화 ‘이 사람을 보라’(피고로 서신 예수님을, 총독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소개하는 말) 를 주제로 한 그림들, 참 아름답습니다.

{ 3 } 누가복음 15장 7, 10절.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 지금 인간사회에서 대부분의 의결은 다수결로 합니다. 왜냐하면, 다수가 바라는 것을 옳다고, 다수의 행복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회의 결의방법도 대부분의 안건을 다수결로 결의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결의는 지지하는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에 의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일을 통해서 모두의 의견을 맞추는 것이 하늘나라의 방법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에 목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이 가 있는 것은 이때문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마음도, 하나님 나라의 고귀함을 존중히 여기게 하옵소서. 저희의 마음도 길 잃은 영혼의 애타는 사정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이 관심이 없더라도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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