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울음의 뜻을 아는 사람은 복되리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서 19장 41-44절 (새번역)

[41]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42]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43]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44]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 * *

저는, 영화 보다가도 울고, 음악 듣다가도, 글을 읽다가도 울컥합니다. 하지만, 만물을 꿰뚫고 계시며, 역사의 전말을 모두 아시는 예수님께서 울고 계실 때에야, 우리는 그 의미를 알기가 힘들 뻔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늘 본문 후반부에서 당신의 우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42-44절) 이렇게 울음의 원인을 말씀하셨는데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 이나,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 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전-후 문맥을 읽었습니다. 조금씩 이해가 되었습니다. 또 주석서를 뒤적거렸더니, 이것은 주후 70년 경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쳐들어 와서, 그 성을 초토화시킬 일을 예언하셨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일을 예언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주님의 울음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 바라보신 것은 예루살렘 성이고, 또 예루살렘 성전이었지마는, 오고 오는 모든 인류의 운명을 내다 보시며, 탄식하고 우셨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갈래갈래 나뉘어서, 서로 이권을 따지고, 서로 전쟁을 벌이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이 비극을 고도의 과학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21세기까지 벌이고 있으니,…

장차 인류는 어찌 될 것입니까? 우리 인류 앞에 진정 소망이 있는 것입니까? 인류 전체를 수십 번 씩이나 멸절시키고도 남을 분량의 핵무기를 만들어 놓고서, 그것을 통제할 정신건강이 가장 약한 자들이 그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이런 지구 위에서 우리가 지금 생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무슨 모험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인류를 내신 하나님 앞에, 잘못을 빌 줄을 모르는 인류의 모습을 보시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 앞에서 울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것들아! 내가 너희를 이러라고 지은 줄 아느냐? 이러라고 피조세계를 너희의 관리 하에 둔 줄 아느냐? 이 소망 없는 것들아? 너희는 너희를 찾아온 창조주 하나님을 왜 알아보지 못하느냔 말이다”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날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예수님께서 우신 것이, 오늘 이 구석진 땅 한국의 의정부에서 할딱거리며 살아 숨쉬고 있는, 아직 철없는 저를 위해서도 우셨던 울음인 것임을 깨달으며, 이 아침에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기도> 주 하나님, 답답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더 깊이 깨닫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의 눈물의 뜻을 알게 도와 주시고, 주님의 눈물 앞에 저희는 마음을 찢으며, 돌이켜 하나님과의 화해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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