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새번역)
사사기 13장 2-3절. [2] 그 때에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가운데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주님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보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임신할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서 1장 11-13절. [11]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분향하는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그는 천사를 보고 놀라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간구를 주님께서 들어 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
* * * *
위의 사사기 본문은 천하장사 삼손이 태어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서 본문은 세례 요한이 태어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대림절 제4주간 벽두에 이런 아기들의 기이한 출생의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참으로 기이한 내력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함입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이 태어날 때에도, 별난 태몽이라든가, 출생을 전후하여 극적인 일들이 발생하든가 해서, 그의 생명이 막연하게 태어난 인생이 아니요, 뭔가 특별한 사명을 가진 것이 틀림없음을 방증하려는 것이 우리들의 보편적이 사고방식입니다.
자연 현상이나 역사의 사건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냉소적인 자세로,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이냐?” 또는 “다 우연한 일들이야. 너무 의미를 두려고 하지 마.” 이렇게 찬 물을 끼얹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연 현상도, 구석진 곳에서 일어난 한 역사의 사소한 사건도 흘려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현상과 사건들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고, 뭔가 인간에게 알려주실 하나님의 계획, 즉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깊은 의도가 담겨진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우연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가족, 그리고 자기 가족이 먹고 사는 문제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아무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의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는 인류는 결국 이 지구를 살지 못할 폐허로, 전쟁터로, 죽음의 골짜기로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영혼에 문을 두드리며 인간사 속에 개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풀이’로 들어오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 뭐라고? 처녀가 잉태를 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도, 하나님이 벌이고 계시는 구원의 역사에 주목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딴 허튼 소리 하지 마.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정신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구 …”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맙니다.
자기가 평생 안고 사는 몸의 세포 하나도, 그 생김생김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우주에 가득찬 별들이 존재하는 이치를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계획은 모두 “헛소리”라며 부인합니다.
이 강퍅한 세상 속으로 의미의 역사가 진행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오셨던 하나님의 아드님이,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자상하시게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기필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눈을 밝히셔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향하여 품으신 계획, 그 계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