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사도행전 7장 51-52, 54, 58-60절. “…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52]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스데반에게 이를 갈았다. … [58] 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서 돌로 쳤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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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의 최대명절의 하나인 성탄일 다음 날이면서, 동시에 초대교회의 스데반의 순교 기념일입니다. 일부러 이 날에 순교자를 기념하도록 정한 것일까요? 아니면, 역사적으로 바로 이 날이 스데반의 순교일인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오늘 기념하는 것일까요?
글쎄올시다. 저도 그 이유가 분명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사 자료에 의거해서 이 날을 정했든, 아니면 오랜 전통이어서 성탄 다음 날인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해자가, 교회의 명절이라고 해서 기독교인을 죽이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까?
교회력을 보면, 성탄일이 지나서 나흘 동안에 세 번의 순교자 기념일이 박혀 있습니다. 이 무슨 불길한 ‘일정 작성’ 이냐 하겠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12월 26일이 스데반의 순교기념일, 28일이 ‘(베들레헴 인근의) 죄 없는 아기들의 순교’ 기념일, 29일이 토마스 베켓 주교 순교 기념일로 교회력이 작성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이 전통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예수님의 탄생 자체가 “한 번 멋지게 살아 보자”, “무병장수하면서, 입신양명하면서, 귀티나게, 부티나게 살아 보자” 고 태어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서게 될 자신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 위에서 만민을 대속하는 속죄양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미리 알고 자라나셨고,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스데반은 누구입니까?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이 너무도 복음증거활동에 바빴기 때문에, 사도들을 돕기 위해서 집사(부제) 일곱 명을 택할 때에 뽑힌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 여교우들이 음식재료 배급에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돕기 위해 뽑혔다고 했습니다. (행6:1이하)
물론 그 일을 충실히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부과되지 않은 일에도 열심을 품고 일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진리를 변론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 부제(집사)가 변론한 내용입니다. 이를 듣던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권력자들, 아니면 권력자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도저히 뭐라고 반론을 펼 수 없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스데반의 증언에, 말로는 당할 수가 없었던지, 달려들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은 첫 순교자가 되었고, 기독교는 세상에서 박해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드러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거짓과 불의함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인간세상은 의와 진리의 하나님을 거부하며, 의와 진리 편에 서는 사람들을 박해합니다. 스데반을 따라, 저희도 하나님 편에 서서 살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