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요한일서 2장 22-25절.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사람이 곧 그리스도의 적대자입니다. [23]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이요, 아들을 시인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또한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24]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속에 간직하십시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그것이 여러분 속에 있으면, 여러분도 아들과 아버지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은 그가 친히 우리에게 주신 약속인데,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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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를 끝내고, 고향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에, 민족을 지도했던 인물, 두 사람이 있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지요? 이 두 사람은 항상 의기투합했고, 단 한 번도 의견이 갈린 일이 없었습니다. 몸은 두 사람이었지만, 영적으로 두 사람은 하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후 300년 동안 교회는 모진 핍박 속에서 고생했습니다. 그렇지만 그토록 박해를 받는 중에는 없었던 이단논쟁이,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나니까, 이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치명적으로 기독교를 와해시키려는 이단이 아리안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론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오늘의 ‘인본주의 신학자’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권력까지 등에 업고, 교회를 인본주의로 끌고가려 했습니다. 여기에 맞서서, 이단 논쟁에서 교회를 건져낸 대표적인 두 분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바실(330?-379)과 그레고리(329-389)였습니다.
그들은 아데네에서 신학 수업을 받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레고리는 수도자가 되어 은둔-금욕생활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친이 교구장으로 있던 나지안조로 가서 50세 무렵까지 수도생활을 했지만, 아리안주의자들에게 미혹을 당하는 교회들이 많아지자, 그는 이단 논쟁의 최일선에 나서서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의 친구 바실 역시 수도자로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나, 신학 강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그를 요청했기 때문에, 그가 가이사랴 지방 주교가 된 이후로는 전적으로 아리우스파를 물리치는 신학논쟁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바실과 그레고리는, 오늘날처럼 서책이나 정보유통 방법이 수월치 않은 시대를 살았으므로, 서로 협력할 기회를 얻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히, 신학의 토대를 니케아신경의 삼위일체적 신관과, 성경의 구원론에 두고 있었으므로, 몸은 둘이었지만, 똑같은 설교와, 똑같은 신학논설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로로 아리안 이단은 교회에서 물러가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은 초기 기독교의 교부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영적 사역을 위해서, 여러분은 단 한 사람의 ‘복음 동지’를 만날 수만 있어도, 진정 복받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영적사역보다 우선하는 것이, 함께 의기투합할 수 있는 동지를 만나는 일입니다. 기도로 간구하시면,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영적으로 한 몸이 될 동지를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주님의 이름으로 단 두 세 사람이라도 모여 기도하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사오니, 저희에게 함께 합력하며 기도할 사람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함께 이 시대를 향한 영적사역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