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월 : ‘주님 위한’ 행동 vs ‘명분 좋은’ 말투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요한복음 12장 3-8절. [3]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8]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 * * *

세상에 두 가지 인간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사랑이 삶의 동기가 되어, 그들의 사랑의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이요, 또 한 부류는 명분으로는 맞는 일이어도, 마음에 없는 일이니, 억지에 못이겨 그냥 타성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예수님 이외에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마리아요, 또 한 사람은 가룟 유다입니다. 이 두 사람이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인간을 대표하는 듯합니다.

마리아는 참 마음으로 예수님을 존경하고 아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게 되면, 권세잡은 자들에게 체포될 것이고, 아마도 돌아가시게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일을 벌써부터 예언하셨지만, 현재 사태가 돌아가는 것이 그 예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하여 뭔가를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자기가 아끼던 나드 향유가 생각났습니다. 그 향유를 어떻게 사용하면 예수님을 위해 도움이 될까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가 택한 것이, 향유로 손님에게 최상의 대접을 해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발에 그것을 모두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최상의 대접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마음의 표시였고, 그 행동에는 그의 사랑과 존경과 동의와 예배가 담겨 있었습니다.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 같은, 스승 예수님을 떠나 보내는 마리아의 작별인사였던 것입니다.

그 때에 가룟 유다가 한 마디 합니다. “이건 정말 낭비군요. 이것을 팔면, 삼백 데나리온 (우리 돈으로 약 3천 만 원) 을 받을 터인데,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마와하겠어요? 이건 정말 미친 짓 아니냐구요?” 이렇게 마리아를 핀잔하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식을대로 식은 상태여서, 상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배반의 주역’ 이 될 유다가 할 말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위하여 다시 한 번 회심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들 곁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너희를 떠나갈 사람이 아니냐? 마리아는 나의 장례를 준비해 준 것이다.”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데도, 유다는 대제사장과의 밀약을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니요!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주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또 이 사랑이 저희의 모든 삶과 행동의 동기와 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위해 살지 않게 하옵소서. 허울만 신앙인의 자세로 살지 않도록, 성령님, 저희를 이끄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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