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요한 복음서 15장 9-11절 ….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11]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 ~~~~~
우리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또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할 때에는, 우리 마음 속에서, “왜 나에게는 영광이 되면 안 되나?” 또는 “나도 기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본문 9하-11) 라고 하셨습니다.
순서 대로 말하면, ‘내 기쁨’이 먼저가 아닙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무슨 계명입니까? 예수님의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신 계명에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면 내 마음 속에서 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도 떠오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사람)들은 흔히 오해합니다. ‘기쁨이 있어야 순종을 하지 않겠느냐?’ ‘마음이 즐거워야 신앙생활을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제가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새 계명, 곧 사랑의 계명을 따르게 되면, 주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신 말씀이, 같은 요한복음서 17장에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 ‘주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도 우리들(* 하느님과 예수님)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 17:21) 이 말씀과도 맥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로-격려하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일체이신 예수님의 코이노니아 속에 우리들을 초청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분리될 수 없듯이, 우리들마저도 그 긴밀한 관계 속에 함께 있게 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예수님의 영광과 기쁨이 우리들의 영광과 기쁨과 분리될 수가 없고, 동시적으로 그 영광과 기쁨 속에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가령 사도행전 2장 44절에서 “믿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고 했고, 이로써 사람들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는데(행 2:43), 이와 동시에 성도들은 기쁘게 공동생활을 했다고 말했습니다.(행 2:46) 말씀에 순종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쁨이 없다고 고민하지 맙시다. 기쁨은 찾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 우리는 순종하는 삶 속에 있는 것이고, 주님의 기쁨 속에 우리도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
<기도> 주 하느님,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을 저희의 유일한 소망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동안, 하느님께서 저희로 인하여 기쁨을 받으시고, 동시에 저희도 기쁨에 넘치는 은혜 안에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