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2과 } 마태오 복음서 13장 1-9절 ….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더니 [2]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그대로 모두 호숫가에 서 있었다.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었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6] 해가 뜨자 타버려 뿌리도 붙이지 못한 채 말랐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9]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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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5월인 지금은 늦봄에 해당합니다. 아직 바쁘게 봄 파종을 마저 해야 하고, 논에는 모심기를 마쳐야 가을에 거둘 수확을 바라볼 것입니다.
육신의 씨앗을 뿌려 수확을 거두는 일도 중요하겠지요. 지금 제가 드리는 말은, 자손을 많이 낳아 기르는 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말씀을 하신 것은, 영적인 씨앗, 곧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영적인 수확, 곧 구원받는 영혼들을 얻는 일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씨 뿌리기 상황은 어떤가요?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입니다. 아무 거둘 것이 없는 우리들 농사의 추수밭을 상상해 봅시다.
( 2 ) 위의 복음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이 얼마나 신실한 농부로서, 씨를 잘 뿌렸던가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뿌려진 씨앗이 어떤 밭에서 잘 결실하게 되는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밭이 좋은 (마음)밭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9-2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뜻을 해설해 주셨지요? 그 해설을 보면,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지 분명해집니다. “길바닥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씨(말씀)를 모조리 거두어감을 의미한다”고 하셨고, “돌밭에 떨어진 씨란, 환난이나 박해가 닥쳐 올 때, 마음에 귀하게 받아들였던 말씀일지라도, 그 말씀 따르기를 포기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하셨으며,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란, 말씀을 듣기는 해도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을 받을 때에, 말씀을 도외시하고 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아멘’하며 받아들였던 복음의 씨앗을 얼마나 잘 자라게 하고, 결실하게 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도록 우리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밭에서 예상되는 소출이 얼마나 될는지를 염려해 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저는 참으로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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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도 1과 } 골로사이 1장 9-11절 …. [9]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참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추어 점점 더 풍성해져서 [10]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게 되고 [11]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올바른 일을 많이 하여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말씀 묵상 )> 위의 10절은 개역성경에서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에서는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라고 번역했습니다.
‘선한 일의 열매’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선한 일이란, 복음을 널리 증거하는 일과, 하느님의 사랑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일 아닐까요?
역시 이 두 가지 사명은, 평소 우리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들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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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차용 } 사도행전 16장 11-15절 ….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가, [12] 거기에서 다시 필립비로 갔다. 그 곳은 마케도니아의 첫 지방의 도시로서 로마의 식민지였다. 우리는 며칠 동안 이 도시에 머물러 있었다. [13] 안식일이 되어 우리는 성문 밖으로 나가 유다인의 기도처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강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그들 가운데는 리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티아디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장수였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주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 바울로의 말을 귀담아듣게 하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나서 “정말 저를 주님의 충실한 신도로 여기신다면 제 집에 오셔서 머물러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면서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 말씀 묵상 )> 구원 받을 성도가 누구일지는 하느님 만이 아십니다. 타박타박 소아시아를 도보로 통과하는 동안 복음의 길이 막히기만 했던 바울 선교단에게, 생소하기 이를 데 없는 유럽 마케도니아 땅에서 복음을 영접한 리디아를 만난 바울 일행의 소감이 진정 놀라웠을 것입니다.
트로아스에서 환상으로 “와서 도와 달라”고 말했던 이(행 16:9)가 바로 이 여인이었던가고 탄복했을 것입니다. 그후 이 여인의 믿음 위에 필립비 교회가 세워졌고, 이 곳이 기독교국가들이 수없이 세워졌던 유럽 선교의 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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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 영적 농사는, 하나 하나의 작물들인 저희 자신의 예상수확도 미천하기 이를 데 없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농사 일 역시 미천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마지막 하느님의 추수의 날에 거둘 것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봄날이 지나기 전에, 복음의 씨를 어서 뿌려, 하느님의 창고에 들일 추수할 작물들이 풍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