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저스틴의 기념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스바니야 3장 14-18절 …. [14] 수도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큰소리로 외쳐라. 수도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축제를 베풀어라. [15] 야훼께서 원수들을 쫓으셨다. 너를 벌하던 자들을 몰아내셨다. 이스라엘의 임금, 야훼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니, 다시는 화를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16] 그날이 오면, 예루살렘에 이렇게 일러주어라. “시온아, 두려워 마라. 기운을 내어라. [17] 너를 구해 내신 용사, 네 하느님 야훼께서 네 안에 계신다.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18] “나는 너에게 내리던 재앙을 거두어들여 다시는 수모를 받지 않게 하리라.”

<( 말씀 묵상 )> 구약 예언서의 대표적인 한 가지 신앙이 ‘야훼의 날이 오면’(본문 16절 서두, 히브리어 ‘바이욤 야훼’ – 영어로 ‘On the day of Yahweh’) 이라는 신앙입니다. 그 날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다만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로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 날’은 “너(* 하느님의 백성)를 벌하던 자들”(본문 15절)이 내쫓기는 날입니다. 모든 “재앙이 거두어지는”(본문 18절) 날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악령의 권세, 불신앙의 권력이 지배하고 있어서, 모든 일이 다 외로 꼬여돌아가고 있습니다. 윗자리에 앉으면 안 될 자가 윗자리에 앉아 온갖 못된 일을 꾸미고 있고, 불성실한 자들을 권좌에 앉혀, 선량한 의지의 사람들을 못살게 굽니다.

이런 세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오셔서 이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아주실 것을 기다리는 것 밖에, 소망이 없음을 고백하는 신앙이 ‘바이욤 야훼’ 신앙입니다.

우리 성가 570장(찬송가 248장)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오래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만민이 다 같이 누리겠네. 보아라 광야에 화초가 피고 … ” 저의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이 찬송으로 저희 칠남매를 가르치셨습니다.

아무 주석적 말씀을 보태지 않으셨지만, 가사의 내용에서 ‘바이욤 야훼’의 신앙을 저희는 깨닫고 있었습니다.

진실로 오늘에도 ‘시온의 아침’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새 하늘과 새 땅”(묵 21:1)의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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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로마서 12장 1, 9-16절 …. [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 [9]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십시오. [10]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다투어 서로 남을 존경하는 일에 뒤지지 마십시오. [11]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12]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환난 속에서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13] 성도들의 딱한 사정을 돌봐 주고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십시오. [14]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15]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십시오. [16] 서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십시오. 그리고 잘난체하지 마십시오.

<( 말씀 묵상 )> 오늘은 주후 제2세기에 순교한 저스틴(Justin Martyr, 100 ? – 165 ?, 라틴어 ‘유스티노’)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는 사마리아(세겜) 출신으로, 그의 가족은 이교도 희랍인들이었습니다. 저스틴은 철학 공부를 좋아해서, 중동지방의 철학, 그리고 그리스 고대철학에 심취하고 있던 중, 철학을 능가하는 바울의 신학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33세에 복음증거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가 강렬하던 때에, 무슨 일로 로마에 갔다가,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그도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철학자로서 박해자 앞에서 단호히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배워야 할 철학이다. 내가 기독교를 알게 된 것은 하느님의 은혜이다. 나를 이방신에게 바칠 제물로 쓰지 마라. 내 목숨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위해 바쳐져야 한다. 내가 이 믿음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주저없이 죽노라.” 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의 남성들의 이름 가운데 ‘유스티노’(저스틴)라는 이름이 참으로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구별하기 위해 ‘순교자’(Martyr)라는 이름을 붙여서 ‘Justin Martyr’라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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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루가 복음서 1장 46-56절 …. [46]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48]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50]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51]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53]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54]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말씀 묵상 )>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습니다. 사람들의 하느님 경험이 세 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이 우리들에게 소개하는 성부 하느님은 눈으로는 뵙지 못하고 음성만 들으면서 맞대면했던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를 비롯하여 다윗왕이나 선지자들을 만나주셨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하느님께서 육신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뜻과 계획을 친히 말씀해 주셨고, 비록 제한된 기간 동안 제한된 지역에서 제한된 수의 사람들만 만나고 가셨지만, 다행히도 복음서를 비롯한 서신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승천하시어, 세상에 더 계시지 않게 되었지만, 눈으로는 뵐 수 없어도,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영으로 우리 곁에 살아계셔서 지금도 인류구원의 일을 계속하고 계시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 모습으로 하느님을 경험하게 된 인류는, 인간의 언어로 ‘성삼위일체 하느님’으로 우리들의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우리는 ‘성자 하느님’께서 인간 [마리아]의 몸에 갇히신 때의 일을 봅니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겸허히 인간의 몸에 10개월을 갇혀 계셨음을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의 큰 사랑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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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철학자 저스틴을 저희에게 주셔서, 모든 철학도들과 2천 년 동안의 모든 교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소망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미천하지만, 저희의 소박한 증언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께서 한 분 하느님이신 것을 이 시대에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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