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12장 24-27절 ….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여러분이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오? [25]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면,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집니다. [26] 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보지 않았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사악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7] 그분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오.”
<( 말씀 묵상 )>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호칭이 여러 가지로 쓰여 있습니다. 야훼(또는 ‘여호와’), 엘로힘, 아도나이, 하나님(영문으로 God)도 쓰였고, 그리고 가장 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사악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는 호칭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 본문에 바로 이 가장 긴 하나님의 호칭이 나옵니다. 왜 이런 호칭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 그 배경이 설명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산 자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왜 요셉과 그의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나쎄를 더 쓰지 않았느냐, 그들은 산 자들이 아니었냐고 묻고 싶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저 그 정도에서 그친 듯이 보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1대 1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입니다. 하지만,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아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입니까!
제가 퍽 존경하는 선교사님 한 분은 ‘모태 신앙’을 대수롭지 않게 보고 계십니다. ‘모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뜨겁지는 않아도 꾸준한 신앙”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정작 “꾸준하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고 지탄합니다. 그래서 저는 찔끔 놀랐습니다. 모태 신앙의 결정적인 약점이 바로 거기 있구나고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모태 신앙’을 선택한 것은 아니니, 저를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모태’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교회 예배에 출석하였으면서도, 왜 신앙생활이, 사무엘 답지 못하고, 티모테오 답지 못하고, 그토록 뜨뜻미지근하냐, 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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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티모테오 후서 1장 3-8절 ….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하며 너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내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 [4] 나는 네가 눈물을 흘리던 일을 기억하기에 너와의 만남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만나게 되면 내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클 것이다.
[5] 나는 너의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 믿음은 먼저 너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케께서 간직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너도 지금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6] 그래서 나는 다시 너를 깨우쳐 주노니, 내가 너에게 안수했을 때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그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여라. [7]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신다. [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님을 위해서 증인이 된 것이나,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죄수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여라.
<( 말씀 묵상 )> 주후 1세기의 사도들의 대를 이어 초대교회를 보전해온 지도자들을 ‘속사도’라고 부릅니다. 속사도의 대표적인 인물이 티모테오입니다. 그의 신앙 형성과정을 사도 바울이 설명하기를, 그의 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케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티모테오의 신앙이 확실한 복음의 전통 위에 서기를 바라서, “내가 너에게 안수했을 때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라. (또한)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라.”(본문 6, 8절)는 긴한 부탁을 합니다.
저는 제 부모님의 신앙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목사였던 제 아버지는 진정 복음의 사도로 평생을 일관하였으며, 교파주의, 세속주의, 인본주의, 성공주의를 철저히 배격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가난훈련을 호되게 치렀지만, 그것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제 할머니는, 1927년까지 평남 용강에서 농사 짓는 농사꾼이었지만, 한 권서인(성경책을 반포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의 간증설교를 듣고서 기독교 신앙을 마음밭에 받아들여, 그 다음 날로 문중 동네에서 추방 당했고, 저희 아버지를 포함해서 3남 3녀와 더불어 온갖 고생을 하면서 기독교신앙으로 집안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권서인은 평안 남북도 일대를 성경책 보따리를 지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신앙간증으로 복음을 증거하다가, 한국 전쟁 때에 남한으로 피난하여 목사가 되었고, 그 후로도 방방곡곡 순회하면서 부흥사경회를 인도한 이, 고 김인서 목사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신앙의 내력 역시, 김인서목사 – 할머니 정대옥 여사 – 아버지 이재면 목사와 어머니 김만실 여사로 이어져 내려오는 신앙입니다. 그분들의 살아있는 신앙적 권고가 오늘도 저에게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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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교회가 오늘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들 >>
가) 글렌달러프의 케빈 (Kevin of Glendalough, 498 ? – 618 ?) 은둔수도자 : 케빈은 켈트교회(체제교회가 아닌 상인들을 비롯한 평민들이 기독교 복음을 영국 땅에 전하여 이룩한 교회를 말함)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신학자도 아니었고, 교회의 공식적인 대표성을 지닌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가 귀족 가문에 태어나서, 경건생활을 힘쓰던 나머지,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바치기를 바라서, 글렌달러프(* ‘두 개의 호수가 있는 골짜기’ 라는 뜻의 지명)에 자연친화적인 농가를 짓고, 거기서 말씀 묵상을 힘쓰며 사는 동안에, 도회지로부터 그의 신앙적 자문을 구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쉼과 영적 묵상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애당초 혼자 은거하기를 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수도생활을 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아일랜드 지방에 그의 지도 하에 세워진 많은 수도원들이 생겼습니다.
나) 루붐 (Janani Luwum, 1922 -1977) 대주교와 우간다의 순교자들 : 야나니 루붐은 우간다 북부의 아촐리 부족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교사로 일하다가, 1948년에 기독교에 귀의하여, 복음전도에 열의를 보였습니다.
195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1974년 우간다성공회의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그는 우간다 뿐만아니라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의 일부를 포함한 광역 관구의 수장으로 있었습니다.
독재자 이디 아민 대통령이 그를 자기 수하에 무릎 꿇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썼으나, 그는 끝까지 굴하지 않고 그의 교민들을 지키기 위해 목자로서의 구실을 다했습니다.
많은 민주 투사들이 아민 대통령에 항거하다가 희생을 당하게 되었는데, 루붐 대주교는 침묵하지 않고 독재에 항의하면서, 학정을 그치기를 요구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1977년 2월 16일 교통사고로 별세했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시신검사에서 얼굴과 가슴에서 총상이 발견되자, 어떤 고위직 인사(혹시, 아민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호위장교)가 처형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이나 언론인들은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성공회는 루붐 대주교를 복음 진리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대표적인 순교자로 그를 추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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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을 공경하는 좋은 부모를 만나 태어날 때부터 신앙생활 속에서 자라는 복을 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이 누구보다 충성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 세계 복음화의 주역들이 되게 하시며, 온 생애를 통해 헌신하는 자들로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