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기원, 복음증거 뿐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성시 } 시편 71편 9, 12, 16, 18절 …. [9] 저를 내치지 마소서, 아주 늙어 버린 이때, 저의 기운마저 쇠진한 지금 저를 버리지 마소서. … [12] 하나님, 제게서 멀리 떠나지 마소서. 저희 하나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 [16] 저는 주 하나님의 위업을 칭송할 터이며, 오로지 주님의 공의로움을 기리렵니다. … [18]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주 하나님, 제가 주님 팔의 능력과 주님의 위력을 앞으로 올 모든 세대에 알릴 때까지 저를 버리지 마옵소서.

{ 서신 } 티모테오 후서 4장 6-8절 …. [6] 나는 이미 피를 쏟고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마치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다. [7] 나는 정의롭게 싸웠고, 달릴 길을 모두 마쳤으며, 믿음을 지켰다. [8]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월계관을 나에게 씌워주실 것이며,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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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이제 노년에 이르러 본향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기원이 성경에 몇 곳 있습니다. 이 귀한 말씀들을 남의 것인 것 마냥 읽을 때도 저에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주의깊게 읽게 됩니다.

위의 시편이 다윗의 시편이라는 제호가 쓰여져 있지는 않더라도, 다윗의 시인 듯이 읽습니다. 누구보다 험한 세월을 살았고, 특별히 수없는 날들을 칼날이 번뜩이는 전쟁마당에서 지냈으며, 목동으로, 왕의 사위로, 또 왕으로, 시인으로 다양한 세상을 경험한 다윗이 노년에 이르러 드디어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기도제목이 ‘나로 하여금 주님의 위업을 세상에 알리게 하옵소서’(시 71:16-18 참조)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편 51편 같은 다윗의 간증은 우리가 쫑긋 귀를 기울여 경청합니다. 살아있는 증언이요, 진실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는지를 그의 입으로 들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2 ) 사도 바울의 노년의 기도가 저희의 심금을 울립니다. “나는 이미 피를 쏟고, 희생 제물이 될 준비를 마쳤다”(딤후 4:6)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수없이 제물들이 칼로 목의 대동맥이 끊기어, 피를 쏟고 죽습니다. 그리고 가죽과 내장을 덜어내서 말갛게 제물이 준비됩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께서 이제는 그의 사명을 다하고, 그의 남아 있는 소망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방인의 땅 로마에서 순교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주저 없이 박해자의 도살의 칼을 받으려고 마음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죽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시상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승리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월계관을 받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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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두 분 >>

( 1 ) 투암의 야를라스 ( Jarlath of Tuam, ? – 550 ) : 야를라스는 주후 6세기 아일랜드에 최초로 설립된 투암 교구의 창설자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복음전도 활동은 아일랜드 코노트(Connacht) 지방에서 시작하였으며, 그가 가르친 제자가 후일에 클론퍼트(Clonfert)에 수도원학교를 설립한 브렌던(Brendan)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야를라스는 그의 스승이 일러준 말씀, 곧 “너의 마차 바퀴가 부러지는 곳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유언을 따라, 투암에 수도공동체를 세웠고, 지역복음화의 센터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는 수도공동체의 장으로, 특별히 출중한 교육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게 된 것은 그의 겸손한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기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면, 주님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 실패합니다” 라고 제자들에게 늘 경계를 주었다고 전합니다.

( 2 ) 이니 코푸라 ( Ini Kopuria, 1900? – 1945) : 이니 코푸라는 주교나 신학자가 아니었고, 경찰관이었습니다. 남태평양에 있는 솔로몬 아일랜드의 섬들 중, 과달카날(Guadalcanal) 섬의 마라보보(Maravovo)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니 코푸라는 어린 시절 성공회 선교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신민정부의 경찰관이 되어, 여러 섬들을 날마다 순회하면서 치안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중병에 걸려서 장기치료를 받던 중에 한 깨달음이 왔는데, 그것은, 주민들이 잘못을 저지른 후에 가서 범법자를 체포하는 일보다, 복음을 전하여 그릇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미리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나은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큰 땅 ‘타발리아(Tabalia)’를 교회에 헌납하고, 1925년에 ‘멜라네시아 형제회’(현지명 ’이레 레타 타시우’)를 설립하여, 그곳에서 선교요원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벌였습니다.

그의 훈련과목은 청빈과 순종, 그리고 정결로서 여느 수도단체를 닮았는데, 훈련생들은 솔로몬 아일랜드와 남태평양 일대의 섬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외지선교사가 아닌 본토인 중심의 전도활동을 일으켜 여러 선교단체에 모범적 예가 되었습니다.

이 멜라네시아 형제회는, 5년만 헌신하는 이들과 종신 헌신하는 이들로 회원이 분류되었고, 독신서약 제도와 동시에, 결혼 후에도 공동체와 별도로 활동하게 하는 제도를 두어, 다양한 회원제도를 활용하고 있어서, 이니 코푸라는 40세에 결혼하여, 공동체를 떠나 활동을 하다가, 1945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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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이 땅에서 순례의 길을 다 마치기까지 다양하게 하나님께 헌신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로, 수도자와 선교사로, 고향땅에서, 그리고 타지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된 삶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월계관을 받게 되기까지 저희가 저희의 소임을 잘 감당하게,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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