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도 아니고, ‘소수’도 아니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구약 } 열왕기 상 18장 20-24, 26, 29-30, 36-39절 …. [20] 아합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했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이시라면 주님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라면 바알을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했다. “주님의 예언자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450명이나 됩니다. [23]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24]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

[26]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끌어다 준비해 놓고,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 [29]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도록 그들은 광란의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아무 대응도 없었고 주의를 끌 만한 일도 없었다. [30]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말했다. “이리 다가오시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

[36]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제가 주님의 종이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했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소서. [37] 저에게 대답하여 주소서. 주님! 저에게 대답해 주소서.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주님이야말로 하나님이시며, 바로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소서.”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모두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까지 핥아 버렸다. [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나님이십니다.”

~~~~~ ~~~~~

<( 말씀 묵상 )> 우리나라는 방금 선거를 치르고 ‘재선거를 해야 옳은지’를 놓고 갈등 중에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러나 저러나 다수를 점한 정당이 A당이니 A당이 이긴 것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다. 부정한 선거로 다수당이 된 것이라면, 그런 당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중봉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교회가 “매일의 성경정과”(Daily Lectionary)로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카르멜 산상의 대결 편을 읽도록 인도한 것은 그야말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보겠습니다.

카르멜 산상에서의 ‘세기의 대결’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와 바알의 제사장 무리의 대결로서, 숫자 상으로는 1:450 이었고, ‘세력 대 세력’ 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결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듯이 극소수인 단 한 명의 엘리야 선지자가 카르멜 산에서의 450명의 바알의 진영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가) “다수는 하나님의 편이 아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편이다.” 이런 공식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오류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편이시고, 정의의 편이십니다. 때로는 정의로운 소수의 편일 수도 있지만, 다수가 정의로울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그 다수의 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 “진리를 다수결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민주주의의 의결 방식은 대체로 다수결 방법을 거칩니다. 그것은 다수가 원하는 방법이 진리와 정의를 선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다수가 바라는 방식인가’를 물어볼 때에 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다수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 진리라고, 정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카르멜 산상의 대결은 ‘어느 신을 참 신이라고 믿어야 하나?’를 실험하는 대결이었습니다. 다수결로 할 뻔했습니다. 이런 해괴한 경쟁을 시도하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셨습니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대결을 하지 않도록 조치하신 것입니다.

다) “나는 소수니까 무조건 옳다” 이런 생각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소수가 정의의 편이라면 하나님은 그 소수의 편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소수가 불의한 입장을 고집하는 이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불의한 자들은 단호히 멸시하십니다.

라) 하나님은 소수의 하나님도 아니시고, 다수의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편이시고, 정의의 편이십니다. 바꿔 말하면,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의 편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편에 서신 것은, 엘리야가 소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여-야 분열상황을 두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의 편이 되실 수도 없고, ‘야’의 편도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진리와 정의의 사람들 편에 서십니다. 그들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도, 진리와 정의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 ~~~~

<기도> 주 하나님, 속히 저희에게 임하시어, 진리와 정의의 사람들을 괴롭히던 자들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친히 진리와 정의의 편이심을 밝히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사는 무리들에게 기쁨의 날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