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마태오 복음서 6장 7-13절 ….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8]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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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본문 9절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시작되는데, 그 첫 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개역개정판 번역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했고, 새번역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라고 했습니다.
영문번역 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은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당신의 이름이 신성시 되소서).” 이라고 했고, New English Bible은 “Our Father in heaven, Thy name be hallowed.” 라고 했습니다.
희랍어 본문을 들어가 볼까요? “파테르 헤몬 호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 “하늘에 계신 분, 우리 아버지여,” “하기아스테토 토 오노마 쑤” – “당신의 이름이 공경받으소서”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한국 말로 번역하면서 “온 세상이”를 앞에 붙인 것은 원문에 없는 삽입이었습니다. 이것이 의역을 기본 원칙으로 했던 공동번역의 용기있는 번역이었습니다. 기도문을 완성시킨다는 것이 그 취지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공경을 받으시기를 바란다” 고 기도하는 것이 무슨 기도자의 올바른 자세인가가 문제시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오래 토론했겠지요. 그리고 나온 결론이 ‘기도자의 입장이 분명해야 기도로서 완성될 것이다’ 였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아버지’(* 하나님의 대명사)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라고 결론을 맺었는데, 실상은, 공동번역 판을 번역하던 이들의 욕심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도록 노력하겠사오니, 이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에 있었던 것이겠지요.
대한성서공회가 낸 번역으로는 ‘새번역’이 가장 최신의 번역이었는데, 그 번역에 가담했던 위원 한 분이, 공동번역으로 주기도문을 사용하고 있는 제게 물었습니다. “개역 번역의 주기도와 공동번역의 주기도를 사용해 본 경험으로, 두 번역의 차이를 어떻게 느끼시는가?”고 물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제가 어렸을 적에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는, 제가 하느님의 이름을 공경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기도했지만, 지금은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 세계 여러 나라들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하느님의 이름도 모르고, 우상 앞에 가서 절하는 모양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외국 사람들 뿐이겠습니까? 제 인척 가운데, 아직도 하느님의 이름을 도외시하고 사는 사람이 있으니..!
( 2 ) 그런데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분이, 비록 짧은 세월을 살았지만,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소서” 라는 기도로 사신 분이셨습니다. ‘버나드 미제키’(Bernard Mizeki, 1861? – 1896)라는 전도사였는데, 그는 오늘날의 모잠비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고자 집을 떠나 남아공의 수도 케입타운으로 가서 낮에는 노동자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성공회 교회에서 운영하는 야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던 중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버나드 미제키는 비록 야학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영어, 포르투칼어를 습득했고, 성경을 아프리카의 여러 토속어로 번역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미제키를 도와 짐바붸로 들어가 교회를 설립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는 어린이 선교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교회에다 초등학교를 세우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성경과 기도서를 현지어인 쇼니아어로 번역했고, 의료 보조 활동으로 주민들을 도왔습니다. 또한 비록 성직 안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평신도로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1896년에, 원주민들이 백인들의 불법 지배와 착취, 그리고 차별에 항거하는 무력 폭동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해칠 것이니 어서 피하라는 주민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그는 “나도 목자의 책임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 혼자 살겠다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피하지 않았습니다.
폭동의 무리들이 마을로 들어와, ‘백인들의 앞잡이’라며 미제키를 죽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35년 여의 그의 보배같은 고귀한 삶은 이렇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통하여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힘으로 아프리카를 복음화할 수 있다는 신념을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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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온 세상에서 존귀히 받들어지기를 빕니다. 저희의 미력이나마 바쳐, 하느님의 이름을 믿어 구원 얻는 도리를 온 세상, 특별히 저희의 이웃이 들을 수 있도록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