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마태오 복음서 7장 1-5절 …. [1]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2]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3]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 하겠느냐? [5]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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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집안에 새 사람을 맞아들일 때에, 저울질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다못해, 일일노동자를 선택할 때에도 사람을 저울질 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평가(evaluate)도 안 하고, 검토(screen)하는 일도 없고, 또 선거할 때에 누구는 어떤 점에서 좋고, 누구는 어떤 점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비평(criticize)하는 일 없이 살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에도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마 7:15), “여러분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믿지 말고 그들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요일 4:1) 라고 했으며,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살전 5:21) 라고 했습니다.
판단하는 일이 아예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법관이 재판을 올바로 할 수가 있고, 부모가 자식들에게 어떻게 바른 교훈을 줄 수가 있을 것이며, 신학자들이 이단을 가려낼 방법이 있겠습니까? 세상은 온통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에서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의 진의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평가-검토’의 의미가 아니라, ‘정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아무개의 생활태도는 좀 시정이 필요하다’라고 했을 때에, 이것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아무개의 생활태도를 보면 구제불능이더라’ 또는 ‘그런 사람은 다시 기회를 주지 말아라’ 그런 표현은 ‘정죄’인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북한 사람들은 포기하셨다’ 이런 말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제 친족들이 아직도 북한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통일의 날을 주실 줄을 믿고 저는 간구하고 있습니다.
또는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언젠가 일본 열도에 큰 지진을 일으키셔서 모두 사라지게 할 거다’ 이런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그들이 한때 원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제 자식의 온 가족이 일본에 가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허물이 보이면, 그것을 보며 나를 성찰하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본문 5절) 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운운’ 하신 말씀이, 마치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후에는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지요.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의 기준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만약 평가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누구는 미흡하고 누구는 흡족하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인간이 인격분자여서 그에게 사람을 판단할 자격을 부여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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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남을 비난하며 정죄하지 말게 하소서. 인정하고, 사람을 살리는 평가를 하게 하옵소서. 이 경쟁적 시대에 지능과 효능을 가지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일을 하지 말게 하옵소서. 모든 사람을 귀히 여기시어, 구원하시려고 친히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