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복음 } 마태오 복음서 7장 6, 13-14절 ….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그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되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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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헤롯 앞에 끌려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분봉왕이었던 헤롯은 자기 생일 날에,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종질녀 뻘인 살로메의 부도덕한 몸짓의 춤 값으로, 하나님의 사람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벤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인간이,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다는 소문을 들었던지라, 죄수로 붙들려 온 예수님의 기적 보기를 탐했었습니다.(눅 23: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묵묵부답 그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눅 23:9) 그래서 헤롯은 자기 호위병들과 함께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하기를 서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눅 23:10)
진정 돼지 앞에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가 던져졌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세속적인 인간들 앞에서 공연히 그들의 놀림감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가령, 대통령 취임축하 음악공연에서 헨델 작곡의 ‘할렐루야’ 합창이 좋겠다면서, 어느 교회 성가대에 그 곡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합시다. 그것을 교회가 수락해야 하겠습니까? 아무리 그 자리가 영예로운 자리로 보이더라도, 그런 일은 불가한 일입니다. 거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수도자가 밤늦게 수도원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길에 만취한 사람이 넘어져서 술주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도자는 그냥 지나칠까 생각했지만 그냥 두고 갔다가는 그 취객이 어떤 사고를 당할는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부축해서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동료들 가운데, 그가 공연한 일을 했다고 탓하는 수도자도 있었습니다. “그런 술주정뱅이에게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겼군요.” 하면서..
그러자 그 수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쓸 모 없는 인간이었고,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는데, 저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셔서 저를 구원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엊저녁 저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다면 어떨까요?
( 2 ) 본문 13-14절의 말씀은 ‘구원의 문은 좁은 문’이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세상을 자기 편한 대로 살아가지고는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박해를 당하고, 손해를 보고, 차별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는 것이 천국을 가는 사람들의 행로입니다.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애틀드리다(Etheldreda, ? – 대략 678) 수녀원장은 남달리 ‘좁은 문’을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애틀드리다는 주후 7세기 영국의 써폭(Suffolk)에서 태어난 공주였습니다. 그녀는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결혼에는 뜻이 없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온 생애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과 사별하기까지 3년 간 그녀는 신방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친정부모는 다시 그녀를 노덤브리아의 오스위왕의 아들 에그프리드 왕자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에그프리드 왕자에게, 오빠와 여동생 사이처럼 지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여, 애틀드리다의 소망대로 수도자로 살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녀는 한 수녀의 도움을 받아 수련수녀가 되어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저녁이면 성당에 들어가 밤새워 기도하는 것이 평생의 일과였습니다.
세상에는 타의에 의해 박해와 온갖 괴로움을 겪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되는 신자들도 있지만, 스스로 주님의 일을 위해 ‘좁은 문’을 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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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는 세상을 살면서, 그저 쉽고 편한 길만 가려는 나약한 인간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오히려 저희가 ‘좁은 길’, 어려운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비록 어려움이 많고 시련이 많아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성령님,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