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테오 복음서 9장 14-17절 …. [14] 그때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여쭈었다. “저희와 파리사이파 사람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에 온 손님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소?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오. [16] 아무도 헌 옷을 새 천 조각으로 꿰매지 않소. 헝겊에 그 옷이 당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소.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온전합니다.”
~~~~~ ~~~~~
<( 말씀 묵상 )> 하나님을 반역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동산 에덴으로부터 쫓겨난 인류와 더불어 다시 화해하시기 위해, 독생자 메시아(그리스도)를 인간 세상에 보내시는 일을 설명할 때에, 성경은 종종 ‘혼인잔치’로 이를 비유합니다.(구약에서는 이사야 62:5, 호세아 2:19-20, 예레미야 2:2, 신약에서는 오늘의 본문 이외에도, 마태 22:1-14, 마태 25:1-13, 누가 12:35-36, 요한 3:29)
이것은 1) 다시는 헤어질 수 없는 인연으로 묶이어짐을 나타내기 위해서, 2) 둘도 없는 경사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3) 하나님께서도 온 마음으로 바라시던 일이요, 인간으로서도 복된 일이라는 점에서 ‘혼인잔치’ 은유법을 동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혼인잔치 비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시면서, ‘지금은 혼인잔치 중이기 때문’ 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이 경사스런 혼인예식 기간 중에 무슨 단식이란 말이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래,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 피조물의 모습을 입으시고 오신 사건이야말로 경사 중의 경사가 아니겠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사셨던 33년은 이 모든 피조세계가 영광을 입었던 기간이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서 창조주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 경사스런 ‘혼인잔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신 것으로 끝났다고 말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다행히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으며, 육신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대신해서, 영으로 임해 오신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으로 더욱 혼인잔치는 고조되었습니다.
이 잔치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과연 인류역사에서 예수님의 강림은, 슬픔과 낙망에 빠져 있던 인류에게 최고의 경사를 가져온 일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이제껏 인류의 삶은 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곳곳에서 <승리의 사건>으로, <성취의 사건>으로 이어져 오는 ‘천국 잔치’가 되었습니다.
온 세상은 지난 2천 년 동안, 아프리카 줄루 족들의 노래 “We are marching in the light of God.”(우리는 하나님의 빛 속에 행진하네.) 가 의미하듯, 환희에 찬 ‘혼인 잔치’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 ~~~~~~
{ 만도 1과 } 로마서 8장 18-19, 21-23절 …. [18]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9] 사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1] 하나님의 창조물이 멸망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이 지금까지 모두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물 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 ~~~~~
<( 말씀 묵상 )>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읽고 있노라면, ‘예수님의 구원 역사는 아직 미완성이라는 말인가, 왜 ‘우리’(* 바울과 뭇 성도들)는 고난을 겪어야 하고(18절),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며(19절), 진통해야 하고(22절), 피조물들 만 아니라 성령께서도 신음해야(26절)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아야할 대상(인류)들이 상당수 아직 세상 권세에게 종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종노릇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망이 없어 헤매는 고통이 아니고, 소망을 목전에 확실히 보고 있기 때문에,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의 소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해산하는 산모가 태어날 아가를 소망 속에 바라보면서도, 마지막 진통을 하고 있는 모양과도 흡사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전도자, 하나님의 추수밭의 충실한 추수꾼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피조물과 함께 성도들이 신음을 하는 중에 있으며,
이 일을 도우시는 성령께서도 한없는 탄식으로, 구원이 성취되는 날, 곧 하나님의 ‘혼인 잔치’가 클라이막스를 넘기기 위해 애태우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통과 낙망 중에 울부짖는 신음소리가 아니라, 영광스런 소망의 다음 순간을 내다보며 마지막 힘을 쏟는 기합 소리입니다.
~~~~ ~~~~
<기도> 주 하나님,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실 때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혼인 잔치는 이제 바야흐로 대단원의 종결의 시간이 가까운 것으로 저희가 믿습니다. 저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진행되고 있는 이 잔치가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영광 속에 완결되게 하옵소서. 또한 저희의 영적 싸움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광스런 승리로 끝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